조양각 옆에 위치한 영천역사박물관 읍성전시관에서는 제29회 “창녕조씨 영천문중”과 관련한 역사 전시회가 열린다. 이 전시회는 영천읍성이라는 공간과 그 속을 살아온 영천 사람들, 그리고 긴 시간이라는 역사가 만들어 준 이야기를 전하는 곳이다. 2023년에 개관 전시회에서는 1800년 초에 제작된 영천의 지도인 <영양도永陽圖>에 그려진 영천읍성이라는 공간의 건축물 즉 공해시설(公廨施設) · 관아시설과 그 관련 시설에 담긴 이야기를 주제로 열었다. 2024년 두 번째 전시회는 영천읍성을 살아간 사람들 “오천 정씨 영천문중” 전이 열려 성황리 이루어졌다. 25년 11월 29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세 번째 전시회는 영천의 명문가로 알려진 “창녕 조씨 영천문중” 전이 열린다.이번 전시회에서는 입향조 희천공 조신충(曺信忠) 관련 자료와 집현전 부제학 정재 조상치(曺尙治)가 배향된 창주서원 현판과 시호 교지, 청백리 조치우(曺致虞,1459~1529) 등과 관련한 자료가 공개된다.그동안 공개된 적이 없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호는 곤봉(昆峯). 1613년(광해군 5) 사마시에 합격한 정사물(鄭四勿,1574∼1649)의 발문이 붙어 있는 조호익의 『지산선생문집』 초간본과 지산선생의 문인 조선 후기의 명재상이자 유학자 잠곡 김육(潛谷 金堉,1580∼1658)이 간행한 것으로 보이는 김육본과 만취당 조학신(曺學臣) 받은 정조대왕 어필 탁본이 수록된 『어제친막제명첩』 등 다양한 역사문화 자료가 선보인다. 특히 눈이 띄는 전시물로는 1930년대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 전역에 이른바 ‘황금광시대’라 불릴 만큼 금광 개발 열풍이 거세게 일었던 시기였다. 1929년에 시작된 세계 경제 대공황을 계기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자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과 투기 자본이 전국 각지의 산간 지역으로 몰려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영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금맥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신문 보도를 통해 확산되면서 순천 일대에는 ‘골드러시(Gold Rush)’라 불릴 만큼의 채광 열풍이 불었다. 영천도 그 열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제강정기 부산일보(釜山日報) 1916년 02월 29일자_3단 기사에는 영천군 고촌면 오룡동 삼성산에서 ‘금광이 발굴되어 유망’하다는 기사가 나와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1935년 일제강점기 금광 지도는 영천역사박물관이 “창녕 조씨” 집안에서 구입해 소장하고 있던 자료로 이번 전시회에 공개한다. 이 지도에는 금광을 비롯해 다양한 광물이 매장된 자리가 그려져 있고, 채굴하기 위해 투자금을 받아 회원 형식의 자료가 공개되어 이목을 끌 것을 보인다. 또한 영천시 화남면 안천리 있는 백학서당(옛 백학서원의 후신), 1921년 1월 설립된 신학문 교육 기관으로 민족 교육을 통해 이육사(李陸史), 이원록(李源祿), ·조재만(曺再萬), 조용찬, 안병철(安柄喆), 이진영(李進榮)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민족 교육 기관인 ‘백학학원’의 설립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이야기와 함께 관련 자료가 공개된다.의미있는 자료로는 500년 만에 부부(夫婦)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조선 성종대 문신이자 학자이며 청렴결백한 관리로 널리 알려진 조치우(曺致虞,1459~1529)선생의 기리기 위해 조선 1531년에 중종 임금이 직접 깨끗한 덕을 높이 평가해 사후(死後)에 나라에서 그의 청렴결백한 덕을 표창하고자 옥비 두 좌(碑石)를 하사한 것이다. 현재 한 좌는 영천시 금호읍 대창면 대재리 유후재 안 내사옥비각에 안치되어 있고, 다른 한 좌의 어사옥비는 부인의 묘소가 있는 이 안치되어 있으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탁본으로 만나게 되는 의미있는 행사가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