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의진은 영천에서 창의했지만 청송, 포항을 비롯한 영남지역 여기저기에서 개개인이나 소수의 인원뿐만 아니라 수십, 수백의 소부대들이 함께 참진하였고 서울로 진격한다는 목표를 세운 의진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군권을 장악한 일본군에 의해 끝내 좌절되고 말았지만 그 의의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 이제 산남의진은 잊혀진 역사가 되어 영천시 자양면 충효재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포항에서는 3대 대장 최세윤 선생을 기리고, 청송에서는 경북의병기념관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정도다. 이래서는 안 된다. 최소한 경상북도가 나서서 산남의진을 재조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영남 각지의 활동지를 찾아 소개하고 알리는 역할도 해야 한다. 스산한 겨울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니 더욱 간절해지는 생각이다.황보근의사 공훈록황보근(皇甫覲)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원직(元直)이며, 초명은 황보명용(皇甫名容)이다. 1882년 지금의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에서 태어났으며 1963년 세상을 떠났다. 황보근(皇甫覲)은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이한구(李韓久)·정순기(鄭純基)·손영각(孫永珏) 등과 더불어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을 결성하자, 권규섭(權奎燮)·성낙희(成樂熙)·성낙호(成樂皥)·이하수(李河秀)·양석용(梁錫容) 등과 함께 신녕 지역을 맡아 활동하였다. 그 후 영천·영덕·강구·흥해 등지에서 수차례 일본군과의 교전에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운 황보근은 1907년 8월 정용기 대장을 비롯한 산남의진 본진 100여명과 함께 죽장의 매현으로 들어가 9월 초 강릉으로 북상을 준비했다. 그러나 일본군 영천수비대의 역습을 받고 입암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가 부상을 입고 귀향하여 치료하던 중 체포되었다. 황보근은 17차례에 걸쳐 고문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였으며 석방된 후 은신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2003년 10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화북면 오동공원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손수만자는 치옥이고 본관은 월성이다. 거사(擧事)를 일으키던 초기에 안수원 등과 더불어 맨 먼저 의진을 따라 여러 고을로 가서 공격할 때는 언제나 먼저 진격하는 부대로 스스로를 자천하였다. 흥해의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일이 실패한 뒤 바닷가를 인접한 지역에서 사회적 신분이 낮고 미천한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울려 물고기 잡고 나무하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다. 세상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그것으로 남은 세월을 보냈다.〈원문〉孫秀滿은 字致玉이요 月城人이라 起事之初에 與安守元等으로 首先從之하야 進攻列邑에 每以先進隊로 自薦焉하고 興海之戰에 身被重傷이나 不墜責務러니 事敗後에 隱於沿海等地하야 與下賤輩로 比肩而以漁樵로 爲業하니 世無知者라 以終餘年하다 <山南倡義誌 卷下63p>孫秀滿 義士 略歷(손수만 의사 약력)孫秀滿(손수만)은 字(자)는 致玉(치옥)이오 관향은 月城(월성)이오 慶州府(경주부) 梅峴里(매현리) 出身(출신)이라 山南義陣(산남의진)이 일어날 때에 孫氏門中(손씨문중)은 남먼저 門議(문의)를 하고 靑壯年(청장년)을 徵發(징발)로 내보낼 때 公(공)은 그 무렵에 한 사람으로 入陣(입진)하여 활약하다가 義兵陣(의병진)이 전말되고 妻子(처자)를 携率(휴솔)하고 沿海方面(연해방면)으로 流動(유동)하여 海村人夫(해촌인부)로 생활하고 피신하다 <山南義陣遺史483p> 이태후자는 덕명이며 본관은 벽진이다. 경은 이맹전 선생의 15세손이다. 성품이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하며 육체의 힘이 장사였다. 1907년 정미 8월 산남의진에 들어왔고 뒤에 이세기를 따라서 옥산전투를 치렀다. 하잘것없는 병장기를 들고 적과 부딪혀 몸에 적의 총탄을 다섯 발이나 맞았지만 억지로 참으면서 적 우두머리 한 사람을 죽였다. 그러자 전 부대가 모두 이태후를 장하다 하였다. 훗날 몸을 숨겼다.〈원문〉李台厚는 字德明이요 碧珍人이라 耕隱十五世孫也라 性豪俠하고 有膂力하다 丁未八月에 入陣하다 後에 從李世紀하야 玉山之戰에 短兵沖突하야 身被五丸而强殺一酋하니 一軍이 皆壯之러라 後遂隱身하다 <山南倡義誌 卷下63p>李台厚 義士 略歷(이태후 의사 약력)李台厚(이태후)는 字(자)는 德明(덕명)이요 관향은 碧珍(벽진)이라 耕隱先生(경은선생)의 十五世孫(십오세손)이라 性稟(성품)이 豪俠(호협)하다 丁未(정미) 八月(팔월)에 入陣(입진)하다 戊申春(무신춘)에 李世紀(이세기)를 따라서 玉山戰(옥산전)에 몸에 五丸(오환)이 관통된 중상을 입고 단병접전으로 왜병 一名(일명)을 타살시키니 一軍(일군)이 모두 칭찬하더라 후에 은신하여 광복운동에 종사하다가 해방을 보고 逝去(서거)하다 <山南義陣遺史48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