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석두(楊錫斗) 관향이 청주인 참판(參判) 효지(孝旨)의 후예다. 효행이 있어 향리(鄕里)가 포상하고 표창하였다.(원문)楊錫斗 淸州人 參判孝旨后 有孝行 鄕里褒彰조동상(趙東相) 본관이 한양인 종대(宗岱)의 5세손이다. 나이 14세에 아버지의 병환을 당하여 단지(斷指)로 피를 드리워 다시 살아났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추증되었다.(원문)趙東相 漢陽人 宗岱五世孫 年十四 當親疾 斷指垂血得甦 事聞贈通訓장일룡(張日龍) 본관이 인동인 여헌(旅軒) 현광(顯光)의 후예다. 9세에 아버지가 학질(虐疾)이 드시어 가물치(烏魚)를 잡숫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때는 마침 한 겨울이었는데 갑자기 물고기가 얼음을 짊어지고 밖으로 뛰쳐나오기에 사람들은 효감(孝感)이라고들 말했다. 고을과 도(鄕道)의 포상의 장계(狀啟)가 있었다.(원문)張日龍 仁同人 旅軒顯光后 九歲父病瘧 思烏魚 時値天寒 忽有魚負氷而出 人謂孝感 有鄕道褒狀 강순항(姜順恒) 본관이 진주인 좌윤(左尹) 헌석(憲碩)의 아들이다. 아버지 병환에 생선회를 잡숫고 싶어하시는데 때는 한 겨울이어서 순항(順恒)이 강(江)을 향해 가다가〔강에 채〕이르기도 전에 한 분의 낚시하는 노인(漁翁)이 한자나 되는 고기를 잡아 〔순항〕앞에서 오시기도 하고, 또한 〔아버지가〕 꿩(雉) 불고기를 잡숫고 싶어하시기에 저자(市)로 이르기도 전에 하 마리의 수꿩이 길가에 엎드려 날아가지도 않았다. 거상(居喪)에 새벽과 저녁에 묘소 살피기를 비바람에도 그만두지 않아 범이 그를 위해 호위(護衛)하기 3년을 하루같이 하였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추증되고 정려(旌閭)가 내려지고 요역(徭役)을 면제 받았다.(원문)姜順恒 晉州人 左尹憲碩子 父病思魚膾 時尙冬 順恒向江未至 有一漁翁 獵尺魚前來 又思雉炙 赴市未及 有一雄雉 伏路邊不飛 居喪晨昏省墓 風雨不廢 虎爲之衛 三年如一日 事聞 贈同樞 旋閭蠲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