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호암산에 올라 보면 조선조 초기에 창건한 호압사(虎壓寺)란 절이 있다. 이 절은 풍수 비보 차원의 사찰로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창건 이유가 재미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 개국 초 한양에 궁궐이 건립될 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정면으로 보이는 관악산의 화기(火氣)와 삼성산(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이었다. 그래서 관악산의 화기는 남쪽의 관악산이 돌(石)이 많은 화산(火山)이기 때문에 그 불기운이 도성에 영향을 못 미치도록 숭례문(崇禮門)의 글자를 다른 사대문의 글자와 달리 세로고 써서 현판을 달았다. 이것은 한문 숭(崇)자 위의 뫼 산(山)자는 불꽃이 타오르는 불화(火)의 형상이므로 맞불로써 도성을 화기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다. 그리고 광화문 양측에는 물속에 살고 있다는 상상의 동물인 해태상을 세우고, 숭례문 앞에는 남지(南池)라는 인공저수지까지 만들어 관악산의 화기를 비보(裨補) 하고자 하였다. 그다음 삼성산(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먼저『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금천조에 실려있는 윤자(尹滋)의 이야기를 보면, “금천의 동쪽에 있는 산의 우뚝한 형세가 범이 걸어가는 것과 같고, 그런 가운데 험하고 위태로운 큰 바위가 있어 이를 범바위(虎巖)라 부른다. 술사가 이를 보고 바위 북쪽에다 절을 세워 호갑(虎岬)이라 하였다.....”라고 적고 있어 호압사는 호랑이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비보 차원에서 세워진 사찰임을 말해준다.그다음 두 번째는 1394년(태조 3)을 전후해 태조가 전국의 장인들을 모아 한양에 궁궐을 지을 때 밤만 되면 축조 중인 건물이 자꾸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고자 태조가 무장을 갖추고 병사들과 함께 밤을 기다리니, 두 눈에 불빛을 흘리며 걸어오는 호랑이와 비슷한 괴물이 나타났다. 군사들은 즉시 활을 쏘고 칼을 휘둘렀으나 괴물은 눈 하나 깜짝 않고 공사 현장을 망가트린 뒤 사라졌다고 한다. 이성계는 숙소로 돌아와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한양은 더없이 좋은 도읍지로다” 하면서 저 멀리 산자락을 가리켰다. 태조는 그때 서야 그 산이 한양을 노려보는 범의 형상임을 알고 노인에게 저 산의 기운을 제압할 방도를 알려 달라고 했다. 노인이 말하기를 “호랑이란 꼬리를 밟으면 꼼짝 못하는 짐승이니 호랑이 형상을 한 산봉우리의 꼬리 부분에 절을 지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입니다.”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 후 바로 그곳에 절을 세우니 비로소 궁궐을 무사히 지을 수 있었고, 그 절의 이름을 호압사(虎壓寺)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풍수비보란 땅의 기운이 지나치게 강한 것은 눌러주고 허결한 곳은 찾아내어 보완해준다는 의미인데 풍수에서는 이것을 비보(裨補), 압승(壓勝), 염승(厭勝)이란 용어를 쓴다. 땅을 인체에 비유하여 사람의 몸에 병이 들었을 때 침이나 뜸으로 질병을 치료하듯이 산천에도 풍수적 결함이 있으면 사찰, 불상, 탑을 세우거나 나무숲을 조성하여 인위적으로 그 흉함을 없앤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보풍수는 고려말 도선국사를 시작으로 조선시대에도 유행했었고 현재까지도 풍수가에서 많이 사용되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