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의진은 나라 위해 목숨 바친 백성들의 역사다. 명분을 중시여기는 사회라 황제의 밀명을 받은 퇴직관료 부자가 외세와 그에 빌붙어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자 하는 반역의 무리 속에서 황제를 구출하여 국가 안위를 보전한다는 것이 창의 동기였다. 하지만 4여 년에 걸쳐 3,000여 명이 개인의 목숨과 가문의 재물을 쏟아 부어 나라를 지키고자 한, 어쩌면 평범한 백성들의 역사다. 지도부는 양반이고 그 양반에 의해 징발(?)되었던 포수들이 산남의진 전력의 핵심이었을 것이다. 산남의진을 제대로 알고자 하면 그 당시 시대상황을 먼저 이해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영천에서 일어났고 정용기 장군이 대장으로 추대되었으되 영천의진이나 정용기의진이 아닌 산남의진을 이름으로 삼았던 이유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지용이자는 운거이고 본관은 충주이다. 산남의진에 들어와 좌익장이 되고, 적과 더불어 창봉을 나누다 중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간 뒤 다시 산남의진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훗날 저잣거리에 피신하여 살았다.〈원문〉池龍伊는 字雲擧요 忠州人이라 入陣爲左翼하고 與敵交鋒타가 重傷而歸하야 不復入陣하고 後에 避身於市하다<山南倡義誌 卷下64p>池龍伊 義士 略歷(지용이 의사 약력)池龍伊(지용이)은 字(자)는 雲擧(운거)이오 관향은 忠州(충주)라 入陣(입진)하여 左翼將(좌익장)으로 있었고 중상을 입고 피신하여 市場(시장)에 商人(상인)이 되다 <山南義陣遺史483p>남문희자는 경현 본관은 영양이며 운강공의 후손이다.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일가인 남석구 등과 더불어 산남의진에 들어왔다. 각 지역에 나가 적의 정세를 정탐하였고 영덕에서 패배한 뒤 청송에서 남석구를 좇았지만 모두 이롭지 못하여 드디어 자취를 감추었다.〈원문〉南文熙는 字景賢이요 英陽人이라 雲崗公后라 至天下大亂에 與族人錫球等으로 俱入山南陣하야 偵探各地하고 至盈德之敗에 從錫球於靑松이라가 皆不利하고 遂遯跡하다 <山南倡義誌 卷下64p>南文熙 義士 略歷(남문희 의사 약력)南文熙(남문희)는 字(자)는 景賢(경현)이요 관향은 英陽(영양)이라 산남 본진에 정보요원으로 활약하였고 후에 靑松西部陣(청송서부진)에 활약하다가 은신하다 <山南義陣遺史484p> 박기동본관과 살던 곳은 분명하지 않다. 1907년 정미 9월 산남의진이 북동대산으로부터 바다를 인접한 지역으로 향할 때 이세기 등을 따라 먼저 포항에 들어가서 김학 등과 연락하였다. 그 후의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다. 〈원문〉朴基東은 本貫及居所不詳이라 丁未九月에 大陣이 自北東大로 發沿海할새 從李世紀等先入浦項하야 通金鶴等하고 以後不詳이라 <山南倡義誌 卷下64p>朴基東 義士 略歷(박기동 의사 약력)朴基東(박기동)은 관향과 거소는 미상이라 丁未(정미) 九月(구월)에 浦項(포항)에 잠입하여 정보를 수집하여 본부에 연락한 일이 있고 이후 전말은 미상이라 <山南義陣遺史484p>조용한자는 붕경이고 본관은 함안이다. 어계공 려의 후손이다. 1908년 무신에 서종락의 청송진을 좇아 의병진의 뒤를 도와주었지만 일이 실패하자 결국 몸을 숨겼다.〈원문〉趙鏞瀚은 字鵬卿이요 咸安人이라 漁溪公旅之后라 戊申之年에 從徐鍾洛之陣하야 援助軍後라가 至事敗而隱身하다 <山南倡義誌 卷下64p>趙鏞瀚 義士 略歷(조용한 의사 약력)趙鏞瀚(조용한)은 字(자)는 鵬卿(붕경)이오 初名(초명)은 용하(鏞河)라고도 하였으며 관향은 咸安(함안)이라 貞節公(정절공) 漁溪先生(어계선생) 旅(려)의 후예요 임란공신 芝嶽先生(지악선생) 東道(동도)의 십일세손(十一世孫)이라 請誦(청송)에 世居(세거)하였다 高宗(고종) 癸未(계미) 四月十六日(사월십육일)에 靑松府(청송부) 薪城里第(신성리제)에서 출생하다 성품이 본래 염직하고 지각이 남달라서 나랏일이 위험하게 되는 것을 보고 설분할 모책을 강구하다가 山南義陣(산남의진)이 일어난 소문을 듣고 徐鍾洛(서종락) 등을 더불고 남 먼저 몸을 허락하고 힘을 다하여 진후보급을 원조하더니 丁未(정미) 一年內(일년내)에 입암과 영덕의 패전을 당하고 戊申年(무신년)에 또 高臥室(고와실)에 참패를 당하고 이 뒤에는 그만한 인격이 없을 것을 짐작하고 드디어 산협에 은신하여 잠행운동을 하다가 광복청천을 못보고 세상을 떠나다 <山南義陣遺史464~4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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