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시 내일동 40번지에 위치한 영남루(嶺南樓)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 건축물로 진주 촉석루(矗石樓), 평양의 부벽루(浮碧樓)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이다. 밀양 강변 절벽 위에 자리한 이 건물은 관아에서 잔치를 베풀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지어진 옛 밀양도호부 객사의 부속 건물이다. 이곳은 통일신라 때 세운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에 작은 누각이 하나 있었는데, 고려 때 절은 폐사되고 누각만 남아있던 것을 1365년 밀양 군수 김주(金湊)가 중창하였다. 그런 후 조선 후기(1844년) 밀양 부사 이인재가 규모를 확장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였고, 1933년에 보물 제147호로 지정되었다가 1955년 12월 국보로 승격되었다. 영남루 우측 아래쪽에는 대나무 숲속에 또 하나의 작은 누각인 아랑각이 있다. 아랑각은 조선 명종 때 정절을 지키려다 억울하게 죽은 전설의 주인공 아랑(阿娘)을 모시는 사당이다. 아랑은 밀양 부사의 귀한 외동딸로 본명은 윤동옥이다. 그는 어느 날 저녁 유모의 꾀임에 빠져 영남루에 달구경을 갔다가 유모와 한통속 관노인 ‘주기’에게 겁탈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자결하여 정절을 지켰다고 한다. 아랑의 아버지는 그 연유도 모른 채 6년여 동안이나 딸을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한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죽은 후 밀양에 부임하는 부사마다 첫날밤에 귀신을 만나 죽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담력이 센 신임부사를 내려보냈고, 부임 첫날밤 아랑의 원혼으로부터 억울한 사연을 듣고는 유모와 관노를 처벌하니 다시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후 밀양 사람들은 아랑의 억울한 죽음과 넋을 위로하고 뭇 여성들의 본보기를 삼고자 아랑의 시체가 있었던 영남루의 아래쪽에 누각과 사당을 지어 매년 4월 16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곳의 산세는 낙동정맥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온 지맥이 대구 비슬산(1.083.4m)을 일으키고 여기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려온 지맥이 밀양의 추화산(242.4m)을 거쳐 아동산(88,1m)을 일으켜 이곳의 현무봉이 되었다. 아동산은 관아의 동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이러한 곳은 지기는 충만할지 모르나 주변의 사신사가 없어 장풍국(藏風局)은 이루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다가 언덕 밑으로 흐르는 밀양강은 이 건물을 환포(環抱) 해주지 못하고 반배(反背)하는 형상이니 풍수 원칙에는 어긋나는 곳이다. 사방으로 바람을 맞는 이런 곳은 생기가 모이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기거할 곳은 못 되나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휴식 공간으로는 괜찮다. 원래 누각은 사방을 트고 마루를 높여 지은 일종의 휴식 공간으로, 선비들이 모여 시를 짓거나 경연과 잔치를 베푸는 장소다. 그러므로 외부의 바람을 막기 위해 문(門)이 달려있는 주택이나 관아, 학교와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땅은 용도에 따라 길흉이 달라질 수가 있다. 강 언덕이라 바람이 시원하고 경관이 아름다운 이러한 곳은 휴식 공간으로는 제격이다. 이곳은 누각에 올라 보면 한편의 동양화를 펼쳐놓은 듯한 풍광이라 주변 경관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 누각이야말로 선비들의 휴식 공간으로 최고의 입지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