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당 조치우(曺致虞, 1459~ 1529)는 조선 중종 때 대구 부사·예천 군수 등을 역임한 인물로 청렴하면서 선정을 베푼 공적이 뛰어나 청백리로 기록되어 있다. 조치우의 고조부는 가선대부 좌익병마사 판희천군사(嘉善大夫左翼兵馬使判熙川郡事) 조신충(曺信忠)으로 창녕조씨 영천 입향조로 5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 중 넷째 아들인 덕원도호부사(德源都護府使) 조상명(曺尙明)이 증조부가 된다. 조상명(曺尙明)은 두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둘째 아들인 부사직(副司直) 조경무(曺敬武)가 조부이다. 조경무는 두 명 아들을 두게 되는데 둘째 아들인 군수(郡守) 조말손(曺末孫)으로 조치우의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의성 김씨(義城金氏)로 부지승문원사(副知承文院事) 김한계(金漢啓)의 딸이다. 조치우는 5명의 아들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순경(舜卿), 호는 정우당(淨友堂)이며, 1459년(세조 5)에 태어나 1529년(중종 24)에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창원 박씨(昌原朴氏)로 사과(司果) 박혁손(朴赫孫)의 딸이며,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한림(翰林) 조효연(曺孝淵,1486~1530)과 충순위(忠順衛) 조은진(曺殷璡), 사위는 현령(縣令) 장세침(張世沈)이다.정우당 조치우와 부인 창원 박씨는 창원에서 노모 봉양에 효심이 지극하였는데 청백리와 함께 이를 기리기 위하여 중종 임금은 조치우 부부에게 『소학(小學)』을 내리고 옥비 두 좌를 하사하였다. 조치우에게 내린 청옥비로 경북 영천시 대창면 칠백로 64-41(대재리 210-1) 비각에 서 있다. 원래 이 비석은 묘소 앞에 위치하여 있었으나 1851년 재사인 “유후재”로 옮겼다고 한다. 조치우의 부인 창원 박씨 어사옥비(백옥비석)는 원래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대한리에 있는 부인 창원 박씨의 묘 앞에 세워 있었으나, 후손들이 파손·도난을 우려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겨 왔다. 대좌(臺座)는 보이지 않고 있으며, 우측 아랫부분이 깨어져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있다. 1987년 5월 19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로 지정되었고, 조선 전기의 묘비와 비슷한 형태로 비수과 비신을 하나의 돌에 새겼으며 높이는 118㎝, 너비는 47㎝, 두께는 19㎝이다. 윗부분에 음각으로 ‘어사옥비(御賜玉碑)’라는 글자와 세로로 음각으로 ‘숙인창원박씨지묘(淑人昌原朴氏之墓)라고 새겨져 있다.조치우는 어머니 의성 김씨(義城金氏) 돌아가시자 상중(喪中)인 해, 1529년에 71세에 사망을 하게 되었다. 큰아들 조효연은 또한 1530년 아버지 상중에 또 죽음을 맞게 된다. 집안에 1년마다 거듭되는 죽음으로 중상(重喪)을 겪게 된다. 지산 조호익은 55세 되던 1599년(선조 32), 왜란이 끝나고 어느 정도 시국이 안정되자, 지산선생은 영천 서쪽의 도촌(陶村)에 거처를 잡는다. 1603년 도촌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산수 풍광이 좋은 오지산(五芝山) 아래 지산촌(芝山村)으로 옮겨 정착하면서 이후 어느 시점에 정우당 조치우 선생의 묘소와 옥비가 창원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약 400년 전 정우당 조치우선생과 부인 창원 박씨 창원 어사옥비의 이별이 시작된 것이 이 시기나 좀 더 이후로 볼 수 있다.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헤어진 두 옥비는 긴 시간의 이별을 거쳐 한자리에 만나 해후를 하고 있다. 400여년 동안 떨어져 있다가 “창녕조씨 영천 문중전”을 통해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부부간에 헤어짐에는 애잔하고 진솔하게 담겨있는 사연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16세기 후반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처럼 이런 사연이었을까?“......(원이엄마) 함께 누우면 나는 언제나 자네에게 ‘이보소!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 했거늘, 어찌 그런 일을 생각하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 자네 여의고는 아무래도 나는 살 힘이 없네. 빨리 자네한테 가고자 하니 나를 데려가소. 자네를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길이 없네. 아무래도 서러운 뜻이 그지없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자네를 그리워하며 살려고 하겠는가. 이 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이르소. 내 꿈에 이 편지 보신 말 자세히 듣고자 하여 이리 써서 넣네. 자세히 보시고 내게 이르소. ......”400년 만에 이루어지는 부부의 만남이 지금 우리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실지 귀를 기우리면 두 부부의 이야기를 똑똑하게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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