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6일 제70회 현충일을 기념하여 (사)최세윤 의병대장기념사업회(이사장 이상준)가 주관하고, 일월충의회(회장 박승대)의 후원으로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 1467-3에 위치한  ‘산남의진항일순국무명삼인의사총(山南義陣抗日殉國無名三人義士冢)’에서 ‘제7회 산남의진 무명3인 의병 호국열사 추모제’ 가 거행되었다. 이 장소는 1907년 11월, 산남의진의 제2대 의병대장 정환직이 체포된 곳으로, 당시 대장을 호위하던 세 명의 의병들은 끝까지 저항했으나 결국 순국하였다. 일본군은 이들의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한 뒤 버려두고, 대장을 대구로 압송하여 영천 남교(南郊·현 영천시 창구동 조양각 부근)에서 총살하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세 명의 주검은 일본군이 완전히 철수한 후, 마을 주민들이 3기의 무덤을 조성하였으나 오랫동안 돌보는 이 없이 가시덤불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1965년경, 윤광열, 박두수, 손용익 등 상옥리 주민들이 이 무덤들을 돌보기 시작했지만, 1995년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3기의 무덤이 합장되어 이장하여 오늘에 이른다. 추모제는 2019년부터 매년 6월 6일에 상옥리 주민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어 왔다. 최근에는 ‘포스코 문화유산 돌봄봉사단’에서 도로변에 안내판을 설치하여, 이곳의 역사적 의미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작은 변화가 의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기리는 데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출처-경북매일>손기찬인동 사람이다. 장성우를 따라 산남의진에 들어왔다. 1907년 정미 9월 고향으로 돌아가서 의병들을 모집하여 산남의진으로 돌아왔는데 일이 실패한 뒤의 전말(顚末)은 분명하지 않다.〈원문〉孫基燦1)은 仁同居人이라 從張性愚入陣하야 丁未九月에 歸鄕募衆而還陣하고 事敗後顚末不詳이라 <山南倡義誌 卷下64p>孫基燦 義士 略歷(손기찬 의사 약력)孫基燦(손기찬)은 仁同居人(인동거인)이라 처음에 河陽(하양) 慶山(경산) 지방을 책임지고 소모하였고 丁未(정미) 九月(구월)에 고향에 돌아와서 모집하여 다시 입진하였고 이후는 미상이라<山南義陣遺史484p>손기찬의사 공훈록1886년 12월 14일 경상도 칠곡군(漆谷郡) 석적면(石積面, 현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반계리(磻溪里)에서 아버지 손경헌(孫慶憲)과 어머니 장청대(張淸大)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906년 4월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창의장 정용기(鄭鏞基)가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전사한 뒤, 1907년 9월 정용기의 부친 정환직(鄭煥直)이 총대장에 취임하자 칠곡 출신의 장준호(張俊灝)·장성우(張性愚)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907년 가을 정환직이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북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장준호·장성우 등과 함께 인동(仁同, 현 구미시 인동동) 및 칠곡(漆谷) 지역으로 파견되어 군사와 무기를 모집하였으며, 나아가 인동 및 칠곡 지역에서 탄약 제조를 담당하기도 하였다.1913년 채기중(蔡基中) 등이 조직한 풍기 광복단(光復團)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5년 7월 풍기(豐基, 현 경북 영주시 풍기읍 일대)의 광복단과 대구(大邱)의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이 통합하여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조직할 때 적극 참여하였다. 1917년 11월 10일 친일 부호 장승원을 처단한 이른바 ‘장승원암살사건(張承遠暗殺事件)’을 후원하였다.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朴尙鎭)이 채기중·강순필(姜順弼)·유창순(庾昌淳) 등을 시켜 장승원의 암살을 결행할 때 보관하고 있던 권총 2자루를 제공하였다. 이 권총은 1916년 6월 30일 마을 주막에서 채기중으로부터 받아서 보관하고 있던 것이다. 당시 채기중은 “이 권총 2자루를 확실하게 보관하여 오는 11월 7일 약목시장으로 가지고 오라. 그 때는 짚 속에 넣어 짚 장수처럼 하고 가지고 오라”는 당부를 하고 넘겨준 것이었다. 이리하여 그 해 11월 7일 채기중·유창순·강순필·임봉주(林鳳柱) 등에게 권총이 들어있는 가방을 약목(若木)시장에서 넘겨주었다. 1918년 1월 24일 충남 아산군(牙山郡, 현 아산시) 도고면장(道高面長) 박용하(朴容夏) 암살사건으로 같은 해 1월 27일 성환(成歡, 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에서 장두환(張斗煥), 예산(禮山)에서 김경태(金敬泰)·임봉주 등이 체포될 때 함께 경찰에 붙잡혔다. 이른바 보안법 위반·공갈살인죄·방화죄·강도죄·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으로 기소되어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살인죄·공갈죄·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중 150일 본형 통산)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1919년 9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중 부분 취소로 살인 혐의는 무죄를 받았으나 이른바 화약류취체령 위반으로 태(苔)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6-04-25 06:27:30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