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을 지나서 우리 집을 방문한 남편 친구 부인이 말했다.“시댁에 내려오니 힘들지 않아요?”그녀는 내 귀에 대고 비밀처럼 살짜쿵 말했다. ‘시골에 내려와서 힘들지 않아요?”가 아니라 시댁이란다. 하긴 지난번에도 시댁 얘기를 꺼낸 사람의 얘기를 한 번 쓴 적이 있다.젊은 여자들이 시댁이 싫어서 시금치를 안 먹고 시장에 안가고 시청 옆에도 안 간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70이 다 된 여자가 아직도 시댁 타령(?)을 하는 줄은 몰랐다. 90이 넘은 시어머니가 혹 계실지도 모르지만 이미 그분을 집에서 모시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러다면 시가가 있는 동네에 귀향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들에게 힘들게 여겨지는 것일까?“아뇨, 모두들 잘해 주시는데요.”마을 회관에 가면 남편의 돌아가신 아버지,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연세 많은 할머니들 중에서 말이다. 그러면 몹시 반갑다. 남편의 친척이나 지인이라고 어려워해 본 적도 없다. 우리 집을 방문하시는 분 중 열에 아홉은 모두 내가 이 시골 생활에 만족하는지를 물어본다. 아주 좋아한다고 하면 몹시도 신기한 듯 쳐다본다. 나는 그분들이 더 신기하다.남편의 고향이 곧 내 고향이 아니고 뭔가?그 분들의 질문에는 도시에나 살던 여자가 이곳 시골에 와서 무료함을 어찌 달래고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물론 이곳 사투리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소잡기는 하지만 그래도 개잡은 데가 낫겠지요.”이런 말을 들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동물인 소와 개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소잡다’는 말은 이곳 사투리로 아주 좁다는 뜻이고 ‘개잡다’는 말은 가깝다는 뜻이니 아주 좁긴 하지만 가까운 곳이 낫겠다는 뜻이란다. 이렇게 이곳 말에도 하나씩 익숙해 간다.남편 친구들 중에는 몇몇 귀촌해서 사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혼자 산다. 부인은 도시에 사는 것이다. 부인에게 왜 남편 혼자만 보냈느냐고 물어보면 “시골 가서 어떻게 살아요?”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친구들과 속닥거리는 말을 들어보면,“아주 아주 편해. 가끔씩 반찬만 갖다 주면 되니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남편이 평생 그녀를 힘들게 했으니 더 이상 가까이 있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남편이 FAO(세계식량농업기구) 필리핀 주재 대표로 5년간 필리핀에 산 적이 있다. 그곳에서 그는 아스마 클럽에 가입한 사람들과 사귀게 되었다. 아니 그가 수장으로 있는 사무실 직원 남자 모두가 아스마 클럽 회원이었다는 거다.아스마 클럽이 무엇이냐고? ‘아스크 마이 와이프(Ask my wife)’의 준말이 바로 아스마인 것이다. 그쪽 필리핀 사람들의 발음이 애스크가 아니고 아스크이다. “휴가를 어디로 가요?” “Ask my wife.” “주말에 좀 더 일할 수 있겠습니까?” “Ask my wife.”그들이 즉답을 피하고 싶을 때 가장 잘 쓰는 말이란다. 사실 핑계만이 아니라 그들 필리핀인들이 가장 편하게 세상을 사는 방법이라나.모두들 은퇴한 지금 필리핀에 가서 가끔 그들을 만나는데 모두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언제나 그들은 말한다. 아내가 자기의 보스라는고 말이다. 남편이 그곳에서 일한 5년간이 우리 부부의 여생을 바꿔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필리핀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이미 모두 아스마 클럽 회원들이지만, 내가 운이 좋아서 우리 세대 중 가장 먼저 아스마 크럽 회원이 된 남편을 둔 행운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덕분에 남편의 고향이 이곳으로 내려 왔지만 조금도 불편함이 없다. 내가 그의 보스니까.아스마 클럽 만세!(2018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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