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며 수많은 세대갈등을 봐왔습니다. 386세대와 X세대의 충돌, 꼰대가 돼버린 베이비붐 세대와 청년층의 엇갈린 시선, 그리고 최근의 MZ세대 논쟁까지. 그런데 요즘 ‘영포티’ 현상을 보며 묘한 기시감과 함께 깊은 우려가 생깁니다. 또다시 같은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영포티(Young-Forty)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젊은 감각을 지닌 센스있는 40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긍정적 메시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젊은 척하는 꼰대’를 조롱하는 멸칭의 말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스냅백 쓰고 명품 운동화 신으면 ‘영포티’, 힙합 듣고 유행어 쓰면 또 ‘영포티’. 40대 이상은 무엇을 해도 비난받는 상황이 돼버렸죠.하지만 잠깐 생각해 볼까요. 40대가 트렌디한 옷을 입고 젊은 문화를 즐기는 게 정말 문제일까요. ‘중년은 중년답게’라는 고정관념 자체가 이미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이값 하라’고 강요하던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비판해왔으면서, 이제 그 칼날을 40대 이상에게 겨누고 있습니다.물론 청년세대의 분노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닙니다. 현장에서 만난 2030세대들의 좌절감은 실로 컸습니다. 비정규직과 긱 이코노미 속에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서울에 작은 아파트 하나 마련하는 게 꿈같은 이야기가 된 현실. 반면 40대 이상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정규직으로 입사하고, 부동산 가격 급등의 수혜를 누렸습니다.그러나 이것이 개인의 잘못일까요. 청년층의 경제적 박탈감과 40대의 문화적 취향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영포티 조롱은 결국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듭니다. 진짜 문제는 양극화와 세대 간 자산격차를 방치한 사회 시스템이지요.더 우려스러운 건 이 갈등의 악순환입니다. MZ세대가 ‘자기중심적’이라는 편견으로 공격받자, 그 반작용으로 영포티 밈이 확산됩니다. 이제 40대는 ‘영포티면 위선, 보수면 꼰대’라는 이중의 덫에 갇혔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일반화하고 혐오하는 이 구도에서 누가 이득을 볼까요. 우리가 깨달은 건 세대 간 편견은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정작 해결해야 할 구조적 모순을 가리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싸우게 만들 뿐입니다.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계속 서로를 조롱하며 갈등을 키울 것인가, 아니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함께 해법을 찾을 것인가입니다.40대 이상은 청년세대의 고통에 더 귀 기울여야 합니다. 자신이 누린 기회가 지금 청년들에겐 주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연애·결혼·자녀관 등을 강요하는 구시대적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청년세대는 40대 개개인을 일반화하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모든 40대 이상이 자산가도, 기득권도 아닙니다. 그들 역시 나름의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세대 간 자산격차와 고용불안정이라는 구조적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합니다. 청년 주거정책, 정규직 전환, 공정한 기회 보장 등 실질적 정책이 필요합니다.우리는 영포티든, MZ세대든, 모든 세대가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40대가 운동화를 신든, 20대가 한복을 입든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중요한 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죠.기자로 살며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 느낄 때는, 서로 다른 세대가 편견을 넘어 이해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였습니다. 영포티 논란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계속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질 것인가, 아니면 함께 다리를 놓을 것인가를 말입니다. 긍정적인 면도 있긴 합니다. 실제로 조롱하는 젊은이가 얼마나 되는지 의문인데 미디어에서 과하게 부풀려진 프레임이라는 말에서 희망을 봅니다. 그럼에도 세대갈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우리 시대의 숙제입니다. 조롱과 혐오가 아닌, 이해와 연대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