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에 또 한번의 폭설이 영천을 덮쳤다. 낮과 밤의 길이가 꼭 같은 춘분날 이다. 며칠 전 음력 2월 초하룻날에 대보름날과 마찬가지로 형님댁에서 오곡밥을 먹을 때(경상도에서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한 번 음력 2월 초하룻날에도 또 한 번 잘 먹는다). 이제 농사일을 잘하라고 오곡밥을 먹으니 봄이 다왔다고 좋아했는데 그만 눈보라가 몰아쳤던 것이다. 영천 지역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란다. 3월 대설이 두 번이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음 날로 눈은 완전히 그치고 파란 하늘과 따뜻한 기운에 이내 녹아버렸다.계절의 순환에 심술을 부려보는 자연을 대하는 방법은 가만히 기다리는 일뿐이라고 생각한다.날씨가 따스한 봄날의 기운을 회복하자 남편과 나는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30년 전에 미국에서 유학할 때는 운전을 했던 남편이, 귀국한 다음부터는 운전대를 놓았다가 이제 이곳 영천에 내려온 작년부터 운전을 다시 시작했다. 30년 가까이 쉬어서 초보나 다름없는 그가 용기를 내어 운전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범하다. 이곳 길에 자동차가 적어 한가하기 때문이란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나는 행복하게 옆 자리에 앉아 20분 거리의 영천 시내로 나간다. 5분도 안돼 우리는 육군 3사관학교 앞을 지난다.지난 3월 초, 3사관학교 졸업생들 임관식 행사 때 생도들 퍼레이드를 잠깐 본 적이 있다. 3사관학교는 영천시가 가진 특별한 자산 중의 하나인데 일 년에 한 번인 임관식을 좀더 멋있고 화려하게, 이왕이면 영천시 전체의 축제로 지냈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축제 전에 시내 여러 곳에 현수막으로 알려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게 하면 민·관·군 화합의 모델로도 멋있고 관광객도 많이 올 수 있을 텐데…….‘북촌 한정식’ 집 앞을 지난다. 지난 가을 입주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 서울서 무려 21명의 고교 동창생들이 내려왔을 때 점심을 먹고 칭송을 들은 집이다. 채식주의 음식점을 표방하는데 두부를 고기처럼 조리해 찬탄을 자아냈다.레시피는? 며느리도 모르는 비밀이란다. 휴일을 지키는 데다 점심 식사 때만 영업을 해서 고객들 실망을 자아냈지만 그곳에 가려면 꼭 전화를 해서 예약을 잡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즉, 주인이 손님을 길들인 셈이다. 사장 부부도 귀촌한 사람인데 둘이서 장사하기에 무리하지 않는 방법으로 한다고 말한다. 돈 벌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이곳 시골엔 그렇게 장사를 하는 사장님들이 꽤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휴업하되 맛이나 서비스로 손님을 끈다.‘궁전 손짜장’ 사장님의 손맛도 대단하다. 손님이 오면 주방으로 들어가 간단히 몇 그릇 말아내고 부인이 서비스를 마치면 느긋하게 객장으로 나와서 손님들의 반응을 살핀다. 재료가 훌륭하고 넉넉한데다 값도 부담 없다. 음식을 짧은 시간에 맛있게 만든다는 것은 그만의 노하우가 몸에 배어 있는 고수라는 뜻이다.우리가 가끔 들르는 국밥집이 ‘광천 온천’ 옆에 있다. 주메뉴 콩나물 국밥의 가격은 4천5백 원에 불과한데 반찬과 밥이 무한 리필이다. 우리야 한 그릇도 다 먹지 못하지만 배고픈 사람들의 배를 채워 주려는 마음씀이 없이는 불가능한 ‘착한’ 영업 방침이다.우리는 ‘PGA 스크린 골프장’ 넓은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한 게임을 시작한다. 영천 시골에 있을 법하지 않은, 서울에 있어도 빠지지 않을 만한 깨끗하고 훌륭한 골프 연습장이다. 필리핀에 있을 때 입문한 보잘것 없던 골프 실력도 15년을 지나자 그럭저럭 부부간에 자웅(?)을 겨룰 정도가 되었다. 이것을 구력이라 한다나? 이번 게임에선 내가 이겼다. 이긴 사람이 식사와 차를 책임지는 우리의 룰 대로 영천 시내 한복판 금호 강변에 자리잡은 ‘소도둑’ 집에 간다. 여긴 저렴한 값에 소고기를 무한리필하는 집이다. 시골에 있으면서 즐거움을 찾아보니 의외로 많은 곳이 이곳 저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게다가 보석 채굴권도 따로 없다. 노다지를 찾으시나요? 그럼 이곳 시골로 오시죠! (2018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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