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독자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런 덕담을 주고 받으면서도 우리는 희망을 말하기가 왠지 어색합니다. 여러 통계에 따른 경제지표는 세계 10위권을 자랑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왜 이리 각박한가요. 숫자는 화려한데 사람들은 불행합니다.문제는 ‘초연결 시대’에 살면서 동시에 ‘초단절 사회’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마트폰 안에서는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옆집 이웃의 얼굴조차 모릅니다. SNS 친구는 수백 명이지만, 진짜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은 없습니다.과거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는 적어도 노동자들을 한 공간에 모았습니다. 그 안에서 동료애가 생겼고,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플랫폼은 우리를 흩어놓습니다. 배달라이더들은 같은 앱을 켜지만 서로 만나지 않습니다. 프리랜서들은 집에서 각자 일하며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연결은 많아졌는데 사회는 사라지고 있습니다.“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된 지 오래입니다. 생존하려 발버둥 칠수록 나뿐인 사람이 되어간다고 사람들은 하소연합니다. 이것은 명백히 우리의 본성에 어긋나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아리스토텔레스가 2천 년 전에 간파했고, 우리 조상들은 계와 품앗이로 실천했던 진리입니다.지금 우리 사회는 두 거대한 힘에 의해 납작하게 눌려 있습니다. 하나는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라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은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치우려 하고, 정치는 먹고사니즘과 이념 대결 사이를 오가며 정작 사회를 보호해야 할 책무를 방기합니다.하지만 우리는 결코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희망은 바로 여기, 우리 안에 있습니다. 저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을 목격합니다. 흩어져 일하는 독립노동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의 권리를 찾아가는 모습과 기후위기를 걱정하며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에 나서는 청년들, 모든 생명의 권리를 고민하는 사람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회를 재건하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진화를 통해 학습한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사회의 기초단위를 지키려는 본능입니다. 친구와 시간을 보내려는 것은 우정이 흐르는 사회를 향한 열망입니다.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새로운 사회이론이 탄생하고, 마침내 사회의 자기 보호를 위한 거대한 물결이 출렁일 것입니다.그렇다면 2026년 새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거창한 구호가 아닙니다. 작고 구체적인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온라인에서 ‘좋아요’ 대신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 단체 채팅방의 이모티콘 대신 손편지 하나를 써보는 것, 배달 앱 대신 동네 식당에 직접 가서 얼굴을 마주하는 것. 이런 아날로그적 따뜻함이 흩어진 우리를 다시 이을 수 있습니다.사회는 스스로 망가지지 않습니다. 외부의 폭력과 압력이 사회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사회는 우리가 매일 조금씩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 함께 나누는 밥 한 끼, 동료에게 보내는 응원이나 메시지 한마디가 사회를 회복시킵니다.챗GPT가 아무리 발전해도 사회이론을 대신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 사회를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관계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진짜 필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사회’입니다.2026년, 흩어진 우리가 다시 모이는 한 해가 되기를. 온라인의 연결을 오프라인의 만남으로, 화면 속 관계를 현실의 관계로 옮겨오는 한 해가 되기를. 우리는 분명 각자도생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래 사회적 동물이고, 그 본성은 어떤 기술도, 어떤 시장도, 어떤 정치로도 뭉갤 수 없기 때문입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그 복은 당신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할 때 더 커진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