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한해가 시작됐다. 병오년은 붉은 말[馬]의 해다. 말은 12띠의 동물 중 크고 힘이 센 동물에 속한다. 반복되는 60년 가운데 불기운이 가장 세고, 숨은 의미로는 화재 · 사고 · 권력 충돌 · 사회적 혼란을 예고하는 의미들이 포함한 해이기도 하다.역술인들은 “오행 상 ‘불의 해’로 천간과 지지 병오(丙午) 두 글자 모두 양(陽)이어서 뜨겁고 큰 불이라 이야기 한다.” 그래서 화기가 충천하는 해가 될 것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역동적인 한 해가 될 것이다.” 필자는 이야기하고 싶다. ‘붉은 말’ 즉 ‘적토마’가 가진 이야기를 찾아가보면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 『수호전』에 나오는 말(名馬)로, 『삼국지연의』에서는 “서방과의 교역에서 얻은 붉은 빛이 도는 털에 토끼처럼 빠른 속도를 자랑해 이러한 이름이 붙게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지통속연의』에도 ‘천하의 명마(名馬)로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원래 중국 후한(後漢) 말기 정치인이었던 동탁(董卓)의 애마였으나, 여포(呂布)를 꾀어오기 위한 이숙(李肅)의 계책으로 적토마를 주어 여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포는 양부 정원(丁原)을 죽이고 동탁의 수하가 된다. 훗날 여포가 조조(曹操)에게 사로잡히면서 적토마는 조조의 손에 들어간다. 관우(關羽)가 하비(下邳)에서 조조에게 패하여 항복했을 때, 조조가 관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에게 적토마를 선물하였다. 그 후 적토마는 관우를 따라 수많은 전쟁에 참여하였다. 이후 관우가 손권(孫權)에게 체포되어 처형된 후에는 마충(馬忠)에게 하사되었으나, 사료를 일체 먹지않고, 굶어 죽음으로써 주인의 뒤를 따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영천지역에도 말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가장 오래된 말과 관련된 유물로는 삼국시대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호읍 어은리에서 출토된 말 모양의 띠고리인 마형대구가 있다. 또 고경면 창하리의 육군 3사관학교 교정에는 용마와 말무덤 설화가 전해지는 황보능장의 묘가 있다. 완산동 금강산성에는 신마(神馬)의 말 발자국 세겨진 ‘용마바위’가 있다.말에 관한 전설로는 황보능장이 타고 다니는 용마를 시험하기 위해 활을 쏘았는데,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쏜 화살을 찾을 수 없었다. 화살보다 용마가 늦었다고 생각한 황보능장이 말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러자 화살이 날아와 나무에 꽂혀다. 말이 화살보다 먼저 도착한 것이었다.자신의 성급한 실수를 후회하고 ‘용마를 그 자리에 고이 묻어준 뒤 훗날 자신도 말 무덤 옆에 묻혔다.’는 구전이 전해진다.말과 관련된 문화 관련 콘텐츠 중에는 조선시대 경상도 신녕현(현 영천시 신녕면)에 위치했던 역참이다. 현재의 신녕면 매양리 일대(신녕중학교 인근)로 추정하고 있다. 영천 신녕은 경상도의 남부 내륙과 동해안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이 일대 14여 개의 역을 관할하는 중심지(찰방역)였다. 또한 조선통신사가 한양에서 일본으로 갈 때 거쳐 가던 주요 경로이기도 했다.대일 문화 외교사절로 반드시 영천을 경유했고, 조선통신사의 전별연은 금호 강변 조양각에서 열렸다. 경상감사가 조선통신사 사행원들에게 베풀었던 전별연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바로 말 위에서 펼쳐지는 마상재였다. 일본에서 공연될 마상재를 미리 연습하고 준비해 보는 리허설 행사와 같은 것이었다.일제강점기에는 완산동에 기차역이 들어서면서 이 일대에 말죽거리가 번성했다. 말 먹이를 주는 시설들이 있어 지금도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완산시장 건너편 말죽거리 골목을 기억하고 있다.영천역사박물관에도 말과 관련된 유물로 <말 안장 갖춤구>와 말 관상법·치료법이 수록된『마경대전』과 말(馬)해에 지니는 부적, 말 관련 목판 등 관련 자료가 여러 점 소장되어 있다.1844년 장수도 찰방과 관련해 ‘관문서나 물품을 전달(傳致)하여 도착(到付)하면, 이를 받아들이고(受納) 직접 관리하는(直使) 성책 문서(長水道去月朔 關文 傳致到付受納直使姓名 成冊)도 소장되어 있다.올해 붉은 말띠해인 병오년을 맞이하여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에너지가 가득한 말의 기운으로 생각이 결정되면 끝까지 관철해 나가는 희망이 가득한 해로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