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부처님의 가르침,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평생 가까이 한 공부이기도 하려니와 우리들 모두 Well-dying의 길에서 자신의 존엄함[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을 체득하는 확실한 가르침이라 믿기 때문이다. 부처님이라 부르는 붓다는 ‘깨달으신 분’을 칭하는 대명사(代名詞)다. 그러나 보통은 우리의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깨달은 존재로 출현한 고오타마 붓다[석가모니]를 지칭한다. 그 분의 말씀, 즉 경전에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아미타불, 미래 용화세계의 미륵불, 동방 유리광세계의 약사여래불 등 무수히 많은 부처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부처님이 신격화되고 신앙의 대상이 되면서 이 다불(多佛)을 다신(多神)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단언컨대 부처님은 신이 아니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시지만 아미타불을 믿고 숭배한다고 극락세계에 가는 것이 아니다. 아미타불의 전생 법장비구가 세운 48대원을 따라 행하여 실천함으로서 왕생극락한다. 이처럼 모든 부처님은 전지전능한 신(神)으로서의 신앙 대상이 아니라 진리의 길로 안내하는 스승으로서 귀의(歸依)와 찬양의 대상이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를 불법(佛法)이라 한다. 불법의 내용은 무엇인가? 진리 즉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이다.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인지와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 논리에 들어맞는 것이 진리다. 불교는 신해행증(信解行證) 즉, 믿고 체득하여 수행함으로서 증득한다는 논리로 설명한다. 인과(因果)와 불성(佛性)을 믿고 연기(緣起)와 공(空)의 이치를 체득하여 팔정도(八正道)와 육바라밀(六婆羅蜜)을 실수(實修)함으로서 아라한(阿羅漢)과 부처의 과(果)를 증득하는 논리이다. (계속)설봉문청송에 살던 사람이다. 누군가는 봉문이 1906년∼1907년 사이에 종사(從事)의 임무로 여러 지역을 종군(從軍)하였다 하는데 그 전말(顚末)은 분명하지 않다.〈원문〉薛奉文은 靑松居人이라 或言丙丁兩年之間에 以從事之任으로 從軍各地하고 顚末不詳이라 <山南倡義誌 卷下65p>薛奉文 義士 略歷(설봉문 의사 약력)薛奉文(설봉문)은 靑松出身(청송출신)이라 或言(혹언) 丙午(병오) 丁未(정미) 양년간에 종사책임으로 활약하였고 전말은 미상이라 <山南義陣遺史486p>정대하서울에 살던 사람이다. 1906년 병오 겨울 동엄공이 밀서(密書)를 받들고 영남지방으로 내려올 때 진두(陣頭)에서 활동하였고 영덕의 패전 이후 충청도로 돌아가서 의병들을 모집하여 재차 의거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상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원문〉丁大廈는 京城居人이라 丙午之冬에 奉東广公密書하고 下嶺南하야 陣頭活動이러니 盈德之敗後로 或言歸湖中하야 募衆再擧라하니 未詳이라 <山南倡義誌 卷下65~66p>丁大廈 義士 略歷(정대하 의사 약력)丁大廈(정대하)는 서울사람이라 東广先生(동엄선생)의 심복인으로서 서울과 영남에 비밀을 연락하였는데 성격이 과감하고 수작이 신실하더니 東广先生(동엄선생) 순절하고 서울로 돌아가다가 湖中(호중)에서 다시 활약하였다 더라 <山南義陣遺史486p>이창송서울에 살던 사람이다. 기밀(機密)의 일로 서울을 왔다 갔다 하였는데, 1905년 을사 이후 험난하고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다. 1907년 정미 겨울 동엄공의 밀서(密書)를 받들고 관동과 충청도를 경유하여 각 지역의 의병진을 연통하고 오래지 않아 영덕에서 패전하였다. 그의 전말(顚末)은 분명하지 않다.〈원문〉 李蒼松은 京城居人이라 以機密之事로 來往京城하야 自乙巳以後로 不避險難이런이 丁未之冬에 奉東广公密書하고 由關東湖中하야 通於各陣하고 未幾有盈德之敗而顚末不詳이라 <山南倡義誌 卷下66p>李蒼松 義士 略歷(이창송 의사 약력)李蒼松(이창송)은 서울사람이오 東广先生(동엄선생)의 심복인이라 행동은 丁大廈(정대하)와 같이 하였다<山南義陣遺史486p>이호인본관은 월성이며 벼슬은 참봉이다. 산남의진을 일으킨 초기부터 여러 해 동안 각 지역을 출몰하면서 적의 실정과 형편을 살피다가 뒤에 적에게 붙잡혔다. 누군가는 대구 감옥에서 죽었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만주로 건너갔다고도 하는데 어느 말이 옳은지는 알지 못한다.〈원문〉李好仁은 月城人이라 官參奉이라 自起事之初로 多年出沒各地하야 以探情勢타가 後被執於敵하야 或云獄死於大邱하고 或言渡滿洲라하니 未知孰是之分이라 <山南倡義誌 卷下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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