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리(8)산 능선을 타고 오르면서 상선은 자신이 처음 길을 밝힌 봉우리를 무심히 쳐다봤다. 이산 저산을 타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런 사연을 곳곳에 묻으면서 반드시 길을 열고, 산을 품고, 소기의 성과를 얻는데 혁혁한 위세로 약초꾼의 선두에 섰다. 산삼은 본래 영물이라 사람을 보면 도망을 가는데 ‘심봤다’의 세 번 외침에 삼의 혼이 놀라서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속설이 전해져 오는 것을 철저히 지켜왔다. 심마니로서, 약초꾼으로서 얼마나 많은 외침이 이 산을 흥건하게 물들게 했겠는가. 이제 세상의 역행에 비분강개하여 심마니로 나섰던 열정이 한껏 무뎌져 산속에서 해거름이 질라치면 두렵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항상 산 아래가 낯설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산속이 살갑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만큼 나이가 든 탓일까. 헤집고 다니면서 캐낸 수확량이 현저히 줄어든 탓일까. 이만큼 산속을 헤맨 세월이라면, 산 아래를 동경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결론에 이른 탓일까. 아무튼 생각이 많아진 것은 확실했다. 천직이라 생각하고 뛰어든 심마니의 여정이 안개 낀 둔덕처럼 흐리멍텅하게 다가왔다. 상선은 키 큰 풀들을 쓰러뜨리며 발길을 재촉하다가, 물소리가 하찮지 않게 귓가를 자극했다. “산속에 물소리가 맞은 가요?”뒤에서 걸음을 보채며 따라오던 설란도 물소리를 들었는지 그 자리에 멈췄다. 간혹 봉우리를 거들내고 한껏 들어찬 물은 바위틈을 끼고돌아 소량으로 흘러 보내는 풍경을 몇 번 목도한 적이 있었다. 상선은 그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설란을 인도했다. 한 번도 접하지 못했을 장엄한 경관을, 우쭐거리며 뽐내면서 보여주고 싶었다.“어머나, 세상에, 마른 땅에 물이라니 이게 가당한 건가요?”물줄기는 바위틈을 뚫고 여러 갈래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한 갈래에서 출발한 물줄기는 마치 연잎처럼 넉넉하게 퍼져 주위를 평화롭게 적셔주고 있었다. 상선도 이제껏 본 물줄기와는 비교가 안 되게 덩치가 크고 분포도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지만 쉽게 접하는 풍경쯤으로 여기면서 대수롭지 않는 표정을 보여 주었다. 설란은 갑자기 옷을 벗었다. 생각지도 않는 행동에 상선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껏 잘못 살아온 기운을 씻어버리고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하산하고 싶어요.” 산속의 온도는 낮았지만 설란의 행동을 막아설 수단(手段)이 없었다. 어느새 알몸뚱이가 된 설란은 떠받들 듯 손 그물에 담은 물로 적시고, 문지르고, 기억하듯 몸속에 담아두고 싶어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상선의 몸은 뜨거워졌고 설란을 향한 욕정은 차고 넘쳤다. 그렇지만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하산하고 싶다는 한 여자의 간절한 소망을 짓밟고 싶진 않았다. 산신령이 점지해주는 산삼을 캐서 ‘심봤다’를 목청껏 외쳐오던 신라 최고의 심마니가 아닌가. 그 영험함을 일순간의 오류로 덤벼들어 짓밟는 행위는 누가 뭐래도 혼자 이겨내고 싶었다.묵묵히 지켜보며, 가장 힘 있고 청결한 산기운을 받아 설란이 밀어올린 꽃대가 부러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한 차례 의식을 치른 경건한 주관자처럼 옷을 입는 동작도 허투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격식을 차리고 있었다. 설란은 이미 새로운 세상을 향한 도약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앞장 선 상선은 몇 번이나 뒤를 밟는 설란을 신기한 듯 돌아보며 산 아래로 내려왔다. 주위가 어둑해진 채로 두 사람을 반기는 새 세상이 옹골차게 들어차 있었다. 지금부터 신라의 땅이라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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