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 용문면에 가면 금당실이란 마을이 있는데 마을 이름이 금당실로 불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첫째는 마을 전체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을 닮은 지형이라 하여 금당(金塘)으로 불렀다는 설과 그다음 마을 앞 금곡천에서 사금(砂金)이 생산되어 이곳을 금당실, 혹은 금곡으로 불렀다는 설, 그리고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가 마을을 지나면서 이곳의 지형이 중국의 양양 금곡과 같다고 해 금곡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 등이 전해진다. 이 마을이 형성된 시기에 대해 예천군 관계자는 문헌이나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마을 곳곳에 있는 고인돌을 볼 때 아마도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옛날부터 예천은 충효의 고장이라 불렀고, ‘천강감로지출예천(天降甘露地出禮泉)’이라 하여 하늘에서는 단 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단 샘물이 솟아 나오는 곳으로 아주 살기 좋은 고장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금당실마을에는 조선 초기 인구 대비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과거 급제자가 나온 곳이며 과거부터 많은 학자와 선비 우국지사 등이 배출되기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편찬한 실학자 권문해 선생도 이곳 사람이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용문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마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이곳은 조선 개국초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를 정할 때 후보지로까지 거론됐으나 큰 물줄기가 없어 아쉽게 서울이 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또한 과거 이 마을에서 수많은 과거급제자를 배출하니 한양처럼 인재가 많다고 하여 반 서울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이곳의 산세는 소백산의 줄기 문경시 동로면의 매봉(866.6m)에서 동남쪽,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뻗어 내려와 마을 뒤 오미봉(207.2m)을 일으켜 이 마을의 주산이 되었다. 주변 산들은 높이와 거리 면에서 완전하지는 못하나 전후좌우로 솟아 있어 나름 장풍국(藏風局)을 이루어주고 있다. 조선 중기 실학자 남사고는 이곳의 지형을 보고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 : 전쟁, 질병, 흉년의 3가지 악재가 들지 않는 곳)로 우리나라의 10승지(十勝地) 중 한 곳으로 꼽기도 하였다. 이 마을은 3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어 물 위에 연꽃이 떠 있는 모양과 같다 하여 과거부터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 터로 이름나 있다. 그러므로 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은 생기의 누설이 없어 늘 생기가 가득하다. 풍수서 『朝鮮의 風水』에서는 연꽃은 향기가 있는 아름다운 꽃이므로 자손들이 영구히 번성하고 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걸인(傑人)을 배출한다고 하였다. 또한 마을의 서편으로는 남북으로 길게 인공 소나무 숲을 조성하였는데 아마도 우리나라 계절풍인 겨울의 차가운 북서풍과 금곡천의 수해 방지를 위한 비보(裨補) 차원에서 심어진 것으로 보인다. 비보란 어떤 지형이나 산세가 풍수적으로 결함이 있으면 이를 인위적으로 보완하여 길지화(吉地化)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길지에 자리 잡은 금당실 마을은 전통 한옥마을로 많은 문화유적과 천연기념물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웃 마을과 달리 과거부터 수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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