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시의회가 휘두른 예산 삭감의 칼날이 지역사회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지난해 말 제249회 정례회에서 단행된 대규모 예산 삭감 이후 한 달여가 지난 지금, 불만과 반발의 목소리는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특히 금호읍은 분노의 진원지가 됐다. 읍사무소 주변과 주요 도로변에는 시의회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빼곡히 내걸렸다. 주민들은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정치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가장 큰 논란은 영천FC U-15(금호중 축구부) 예산 전액 삭감이다. 시의회는 지난 12월 17일 본회의에서 1억4200만원의 운영비를 단칼에 베어냈다.후폭풍은 즉각 나타났다. 학교 측이 기숙사 운영 중단을 선언하자 기존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전학을 희망하던 외지 학생들도 발길을 돌렸다. 사실상 팀 해체 수순이다.학부모들의 목소리는 비통하다. “학교 인근에 별도 숙소를 구하라는 것은 현실성 없는 요구”라며 “축구를 포기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항변한다.배수예 시의회 행정문화복지위원장은 5분발언에서 “선수 이탈의 원인은 예산 삭감이 아닌 운영 실패와 지도자 공백”이라며 “정상화 계획 없는 예산 투입은 무책임하다”고 반박했다. 운영 체계가 정립되면 지원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문화재 관련 예산도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6월 국보로 승격된 영천 청제와 청제비 학술대회, 완산동 고분군 학술대회, 관내 지석묘 학술대회 예산 각 2000만원씩이 전액 삭감됐다. 지석묘 발굴조사 예산 2억원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청제추진위원회는 즉각 성명서를 내고 강력 반발했다.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 가치를 훼손하고 시민 자긍심을 짓밟는 행위”라며 “청제 전체의 국가 사적 지정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서길수 추진위원장은 더욱 날을 세웠다. “청제비를 지킨다는 것은 단지 돌을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기억을 이어가는 일”이라며 “행정의 무관심과 단 한 해의 예산 삭감으로도 그 유산의 숨결을 끊어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이에 대해 배 위원장은 “국가 차원의 잠정목록 등재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유네스코 등재를 전제로 한 용역은 선후가 바뀐 예산”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수식어가 담긴 용역비가 아니라 실질적인 기본 관리 예산이라는 설명이다.지난달 23일 심사된 2025년도 제3회 추경예산안에서도 논란은 이어졌다. 시의회는 금호일반산업단지 조성 특별회계전출금 20억원을 삭감했다. 이 산업단지 용수공급 상수도 시설공사비 5억2000만원도 함께 잘라냈다.금호읍 주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오는 3월 개통되는 금호-대창 하이패스 IC와 맞춰 산업단지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올 상반기 완공이 가능하다”며 “기업 유치, 재정 안정,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연쇄적 이익이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이들은 “선거를 앞두고 최기문 시장의 공약사항이라는 이유로 지역 시의원이 예산 삭감에 앞장섰다”며 “지역 발전을 발목잡는 시의원들이 도대체 어느 나라 시의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영천공설시장 질서계도요원 2명의 인건비 5200만원 삭감도 논란거리다. 80대 이상 고령 노인들이 주 고객인 시장 특성상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계도요원이 필요하다는 상인회 측과, 손님이 급격히 줄어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이 사안은 올해 추경에서 재논의될 가능성이 있어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분위기다.완산동 고분군 발굴부지 매입비도 21억원 중 7억원이 삭감됐다. 또한 토지구획정리사업과 관련해서는 공사 현장 인근 주공아파트와 안야사 일대 주민들이 소음과 분진 등으로 생활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주차장 조성 예산이 삭감된 데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최근 영천시 자유게시판에는 ‘정당공천을 없앱시다’라는 제목의 글이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받으며 예산 심의의 공정성과 지방선거 정당공천 제도를 둘러싼 논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영천시의회의 예산 삭감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재정 건전성과 지역 발전,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지역사회는 깊은 상처와 갈등을 안고 새해를 맞았다. 이런 가운데 영천시의 재의 요구서가 지난 7일 영천시의회에 접수됐고, 의회는 오는 26일부터 열리는 제250회 임시회에서 이를 처리할 예정이다.최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