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점곡면에 가면 조선조 문신이었던 김사원(金士元)과 영의정 유성룡 등 40여 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한 사촌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1392년 안동에 살던 김자첨(金子膽)이 이곳으로 건너와 정착하여 입향조가 되었고, 이후 1750년 무렵 풍산류씨인 류태춘(柳泰春)이 이곳에 이주하여 수백 년 동안 두 성씨가 함께 세거하고 있는 반촌마을이다. 사촌(沙村)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마을 주변의 협곡에 의해 사토가 퇴적돼 마을의 땅이 비옥하기 때문에 사촌이라고 붙여졌다는 설과 고려 중기 훈신 김방경의 후예인 김자첨이 안동 회곡(檜谷)에서 1392년 입향하여 중국의 사진촌(沙眞村)을 본따 사촌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 마을에는 3명의 정승이 태어난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신라시대 나천업(羅千業), 조선시대 류성룡,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는 한 사람이 더 있다고 한다. 그래서 류성룡의 어머니가 친정인 사촌마을에 와서 출산을 하였기에 새로 태어날 한 사람은 본 손에서 태어나야 한다며 한때는 출가외인이 친정에 와서 출산하는 것을 금지 시켰다고 한다. 이 마을은 선비의 고장답게 1582년(선조 15)에 김사원이 후진양성을 위해 지은 만취당(晩翠堂)이 있는데 현재 경북 유형문화재(제16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은 사가의 목조건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또한 안동김씨 종택과 송은 김광수가 연산군 때 벼슬에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지은 영귀정 등 30여 채에 이르는 한옥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입향조인 김자첨이 이주해오면서 이 마을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서편에 심은 방풍림은 그 길이가 약 1km에 폭이 45m나 된다. 이 숲은 경북 도내에서 가장 큰 풍치림으로 1999년 천년기념물 제405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이 마을은 의병기념관과 마을 자료전시관에서 보듯이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신의병 등 역사의 전환기마다 의병을 주도한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이곳의 산세는 안동시 임하면 기룡산(555.4m)에서 남쪽으로 지맥을 뻗어 내려와 점곡면에서 생해봉(431m)를 일으켜 이 마을의 주산이 되었다. 마을 뒷산은 문필봉으로 마을에 많은 선비가 출현할 것을 예약해주고, 좌측으로는 주산에서 뻗어 내려온 지맥이 나름 청룡의 역할을 해준다. 그러나 마을의 우측으로는 그렇다 할 산줄기가 없어 겨울의 차가운 북서풍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마을에서는 이러한 풍수적 결함을 없애고자 남북으로 길게 비보(裨補) 숲을 조성하여 바람의 피해를 줄이고자 하였다. 이 방풍림은 마을의 서편에 위치한다고 하여 지금도 서림(西林)으로 부르고 있다. 이곳의 수세는 좌측 청룡자락 넘어 점곡저수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마을 앞 미천에 합류하고 마을 우측 백호 자락 안쪽에서 흘러나온 물도 미천에 합류하여 우측으로 계속 흘러나가 낙동강에 합류한다. 마을 앞 미천의 물은 마을을 환포 해주는 궁수(弓水)로 흘러나가니 마을의 생기를 잘 갈무리해준다. 원래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라 하여 완전한 땅이란 없는 법, 결함이 있는 부분은 비보를 하여 풍수적 길지로 만들었으니 사촌마을은 600여 년이 넘도록 집성촌 선비마을로 그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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