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우선 부처님께서 왜 인생은 고통이라고 하셨던 것인지, 그 진실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즉 부처님께서 인생은 몽땅 고통스럽기만 한 것이니 그런 줄 알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만물의 세 가지 특징을 ‘삼법인(三法印)’으로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법구경’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일체행무상(一切行無常) 여혜소관찰(如慧所觀察) 약능각차고(若能覺此苦) 행도정기적(行道淨其跡)‘모든 것은 덧없다’고 지혜의 눈으로 이 이치를 볼 때, 괴로움을 싫어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이것이 청정(淸淨)에 이르는 길이다. 일체중행고(一切衆行苦) 여혜지소견(如慧之所見) 약능각차고(若能覺此苦) 행도정기적(行道淨其跡)‘모든 것은 괴로움이다’고 지혜의 눈으로 이 이치를 볼 때, 괴로움을 싫어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일체행무아(一切行無我) 여혜지소견(如慧之所見) 약능각차고(若能覺此苦) 행도정기적(行道淨其跡)‘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고 지혜의 눈으로 이 이치를 볼 때, 괴로움을 싫어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즉 모든 사물을 지혜의 눈으로 본다면 고통을 덜고 깨끗함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흡족하게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어리석음을 깨닫고 야망을 버려야 합니다. ‘법구경’ 제1에 있는 예화로 말씀드리겠습니다.부처님 당시의 이야기입니다.나열기 국 남쪽 성에서 2백리 쯤 떨어진 곳에 큰 산이 있었습니다. 남쪽으로 가려면 언제나 이 산을 지나가야만 하였는데, 이 산은 높고 가파른 곳이라 다니기가 험난할 뿐만 아니라, 사납고 포악한 5백 명의 강도떼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강도들은 산을 지나는 행인들을 붙잡아 재물을 빼앗고 심지어는 목숨을 해치는 일도 많았습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무역을 하는 상인들은 이런 잔인한 강도 때문에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달리 갈 수 있는 길이 없으므로 국왕에게 그 사정을 호소했습니다. 국왕은 군사를 보내 강도를 잡으려 했으나, 험난한 산악지리에 익숙한 강도들의 출몰을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번번이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습니다.이때 부처님은 많은 사람들이 이 강도 때문에 해를 입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또 강도의 무리들이 사람을 해치는 일로 업을 삼아 악업만 더할 뿐 나락으로 빠져드는 하루살이와 같은 생활을 하는 일이 있어도 올바른 법을 볼 수 없으며, 귀가 있어도 참다운 진리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니 부처님 보시기에는 귀머거리나 장님과 다를 바 없이 가엾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강도들은 참으로 불쌍하구나. 마치 깊은 연못에 가라앉은 돌처럼 죄업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들이다. 내가 친히 가서 그들을 구제하리라.’이렇게 생각하신 부처님은 아름다운 세속의 옷차림을 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해 길을 나섰습니다. 말을 타고 긴 칼을 차고 한 손에는 활을 들고 산을 오르는 부처님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먼 길을 떠나는 상인의 차림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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