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시작되고 2년이 지난 1594(선조27)년 정월에 실시한 <만력이십사년 갑오 정월일 별시무과 방목>은 임진왜란 기간 중 실시한 여러 차례의 실시된 무과방목으로서는 현존하는 자료로는 현재까지 유일하다고 전해진다.방목 기록을 통해 급제자의 직역, 부친의 지위, 본관, 거주지, 형제관계, 연령 등이 수록되어져 무과급제자의 신분과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영천에서 치루어진 무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이 자료에는 모두 418명의 명단이 기록되어있다. ‘갑과 1등 1인’, ‘을과 2등 10인’, ‘병과 3등 407인’으로 표기하고 있다.이 방목의 종이의 상태나 먹색의 형태로 보아 20세기 전후로 해서 어떤 집안에서 보관하고 있던 1594년 방목을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방목의 첫장부터 시작되는 시관(試官)의 구성 명단에는 상시관(上試官) :겸순찰사 한효순(韓孝純)/부시관(副試官) : 의선현령 정희현(鄭希玄), 밀양부사 박경신(朴慶新)/참시관(參試官) : 청송부사 박유인(朴惟仁)/입문관(入門官) : 경산현령 고충향(高忠鄕)/차비관(差備官) : 만호 민정홍(閔庭鴻), 하양현감 김난서(金鸞瑞). 주박 김□□, 수문장 박□□, 최덕부(崔德富), 급제 박종남(朴從男), 권전(權詮), 訓鍊奉事 이몽량(李夢亮), 김억만(金億萬), 주박 윤홍명(尹弘鳴)과 함께 418명의 급제자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그 가운데 영천 거주 급제자만 뽑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