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학정로(蒙學正路)』는 ‘어린아이(蒙)를 가르치는(學) 바른(正) 길(路)’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매산 정중기(鄭重器, 1685~1757) 집안의 아이들을 위해 여러 옛 성현들의 자료를 모아 편집해 만든 일종에 아동용 학습서이다. 정중기는 영일정씨로, 포은 정몽주의 후손이자 임진왜란에 참여한 정세아의 5대손이다. 1727년(영조 3년)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부친 정석달에게 ‘위기지학’의 학문 기초를 배웠고, 이후 정만양 · 정규양 형제 등에게 수학했다. 예학(禮學)과 경학에 밝았으며 이인좌의 난 이후 영남 인사들이 차별받자, 이를 시정해 달라는 연명 상소를 주도하기도 했다.이 책은 『매산선생유집』 필사 원고본과 함께 나온 자료를 구입했다. 책의 뒷면에 필사기록을 통해 제작 시기를 유추해 볼 수 있는데 “계묘 3월 신장우 매산지하(癸卯三月新粧于梅山之下)”의 묵서가 기록되어 있다.책의 순서인 편차를 살펴보면 첫번째로 사천 김종덕(沙川 金宗德, 1724~1797)의 훈몽정본(川沙先生 金宗德 訓蒙正本)이 20장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아이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부모에 대할 때 모습과 스승에 대한 예절.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숙지해야 할 기본 지식과 기본 학습과 교양을 수록했다.그 다음은『예기(禮記)』의「내측(內則)」편을 4장 분량으로 요약하여 가정 안에서의 효도와 자녀 교육에서 필요한 유교적 생활 규범의 핵심을 담고 있는 글을 실었다. 그리고 세수하고 머리 빗는 일, 부모님께 안부를 묻는 일(혼정신성) 등 아주 세밀한 일상을 다루고, ‘예(禮)’가 거창한 의식이 아니라 일상의 평범한 행동 속에서 경(敬)을 실천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다음 순서는 제자직(弟子職)으로 『관자(管子)』의 제자(弟子) 편에 수록된 글이다, 스승을 모시는 제자가 지켜야 할 구체적인 행동 규범을 담은 유교 교육의 기초적인 글을 수록했다.스승보다 먼저 일어나고, 스승이 앉으라고 한 뒤에 앉으며, 질문할 때는 공손히 서 있어야 하며, 길을 걸을 때는 어른의 뒤를 따르고, 식사할 때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는 순서까지 규정하고 있는 글이다.이어『논어(論語)』「위정(爲政)」편에서 공자가 술회한 이 구절은 평생에 걸친 학문의 성숙 단계를 보여주는 유교적 정수이다. 이는 ‘도덕적 자아를 완성해 가는 자기 초월의 과정’으로 분석한 글인 공자가 15세 ‘지학(志學)’부터 70세 ‘종심(從心)’에 이르기까지 평생에 걸쳐 도달하고자 했던 학문의 성숙 단계를 수록하여, 공부가 단기적인 목표가 아닌 평생의 수양 과정임을 명시한 글을 수록해 두었다. 그 아래로『주선생백록동규(朱先生白鹿洞規)』를 저본(底本)으로 주희(주자)가 백록동서원을 재건하며 세운 학칙으로, 성리학적 교육의 표준 모델이자 조선 유학의 근간이 된 문헌을 수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규칙이 아닌, ‘교육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실천’을 집대성한 교육 헌장으로 평가하고 있다.이 학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오교지목(五敎之目)은 학문의 목적은 인륜(부자·군신·부부·장유·붕우)을 밝히는 데 있음을 명시하고 있으며, 위학지서(爲學之序)에서는 공부의 단계(박학·심문·신사·명변·독행)를 제시하여 지식과 실천으로 연결하고 있다.수신·처사·접인(修身·處事·接人)에서는 자신을 닦고, 일을 처리하고, 남을 대할 때의 구체적인 지침을 담고 있다.송나라 주희가 정립한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는 조선 시대에는 퇴계 이황의 이산원규(伊山院規)로 그 전통을 이어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 선생의『재거학규(齋居學規)』로 이어져 퇴계 학맥을 계승한 영남 남인의 교육 철학이 집약되었다.‘齋’는 학자·선비의 거처(학사/학원)를 뜻하는 말로, ‘齋居學規’는 선비가 학사(學舍)에서의 학습 규정을 가리키는 말이다.『몽학정로(蒙學正路)』는 제현의 글을 모아 엮은 글이지만 오천 정씨 정중기 집안에서 아이들에게 단순히 책을 읽는 법뿐만 아니라, 어른을 뵙고 물러나는 예절(진퇴), 몸가짐(부앙), 언행의 조심성 등 일상 속의 실천적 예절을 강조하고 있다. 영천 매산고택과 산수정에서 학문을 닦았던 매산 선생 후손들의 숨결이 닿아 있는 이 책은 필사 기록(癸卯三月新粧于梅山之下)을 통해 그 후손들에 의해 제작된 시기와 정성을 짐작게 한다.현대 교육이 ‘무엇을 아는가’에 치중할 때, 『몽학정로』는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어른을 뵙는 법, 언행의 조심성,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도를 찾는 매산 가문의 가르침은 인성 교육이 무너진 오늘날 자손들에게 명예나 재물보다 가문의 명예와 도덕적 자존심을 지킬 것을 강조한 이 정신이 현대사회에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