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에 있는 외암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중요민속문화재로 등록된 여덟 마을 중 한 곳이다. 국내의 전통민속마을이 대부분 집성촌을 이루고 있듯이 외암마을 역시 예안이씨들의 집성촌이다. 이 마을은 약 500여 년 전에는 강씨와 목씨 그리고 평택 진씨가 살고 있었으나 16세기에 이사종(?~1589)이 참봉 진안평의 맏딸과 결혼하게 되면서 예안이씨 일가가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외암마을이 본격적으로 예안이씨의 터전이 된 것은 이 마을 입향조 이사종의 5대손 외암 이간(1677~1737)에서부터이며 마을 이름 역시 이간의 호(號)에서 따왔다. 그는 숙종 36년(1710) 장릉참봉에 천거되었지만 취임하지 않았고 숙종 42년(1716) 다시 천거되자 세자시강원 자의(諮議)가 되었다. 그 후 회덕현감, 충청도도사 등을 제수받았으나 모두 사양하고 향리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데 전념하였다. 그가 1737년 51세로 사망하자 정조는 이조참판을, 순조는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문정공이라는 시호와 함께 불천위를 내렸고, 저서로는 『외암유고』가 남아있다. 외암리에는 참판댁의 주인이었던 이정렬을 비롯해 조선 후기에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고 선비의 고장답게 현재까지도 많은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현재 60여 호 남짓 되는 이 마을은 마을 돌담길이 인상적이며 집집마다 쌓은 담장 길이를 모두 합하면 5,300여 미터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의 전통가옥들은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지 명을 따서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참봉댁, 종손댁, 송화댁, 영암댁, 신창댁 등의 택호가 정해져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 초가지붕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이곳을 배경으로 ‘취화선’과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가 촬영되기도 하였다.이 마을의 주산은 설화산(447.5m)이고 안산은 면잠산(180m)이다. 면잠산은 그 모양이 반듯한 삼각형에 가까워 풍수에서는 이러한 산을 귀인봉 혹은 문필봉이라 한다. 이러한 산을 정면으로 하는 마을에서는 많은 관료들이 배출될 것을 미리 예견해주고 있다. 그리고 설화산이 마을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지형이 동고서저(東高西低) 형상이라 자연의 순리에 맞추다 보니 집의 방향은 대부분 남서향이다. 이곳의 수세는 마을 남쪽 광덕산과 동남쪽의 망경산 자락에서 흘러나온 외암천이 마을 앞으로 들어오고 좌측(동쪽)의 설화산 자락에서 흘러나온 물과 우측 백호 자락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두 마을 앞에서 합수하여 마을을 감싸며 우측으로 흘러 온양천으로 들어간다. 풍수 고서들마다 여러 물이 조당에 와서 모이면 그 안쪽을 대귀할 곳이라 하였으니 이 마을의 수세야말로 최고의 조건이다. 풍수에서는 수관재물(水管財物)이라 하여 물은 재물을 관장하기 때문에 물이 풍부한 외암마을은 아름다운 산세와 더불어 부귀의 발복이 가득하다. 단, 마을과 마을 뒤쪽의 설화산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어 양택의 첫째 조건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조건을 완전히 갖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허결점을 보완하고자 마을의 서북쪽에는 소나무를 심어 겨울철의 차가운 북서풍을 막고자 비보(裨補) 숲까지 조성하였으니 이 마을 역시 양택 적 길지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