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리(13)방문을 걸기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미닫이문이 파들파들 떨고 있다고 느꼈고, 문고리를 잡은 자신의 손을 눈여겨봤다. 그것은 범접할 수 없는 치명적인 울림과 충격과 공포를 고스란히 담은 하나의 폭우(暴雨)를 맞이한 후줄근한 모습, 그 자체였다. 벽보는 달빛이 번진 밖을 무심코 쳐다봤다. 싸리나무 울타리 한쪽이 형편없이 찌그러져, 바윗돌이 굴러 내린 몰골을 하고 있었다. 지게에 한 짐씩 싣고 산을 타고 내려와 싸리나무 가지 여러 개를 나란히 세워 발처럼 길게 엮어 담장을 만든 것이 엊그제였다. 그런데 범이 한 번에 훌쩍 타고 넘은 충격의 뒤끝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싸리나무 가지는 낭창하여 쉽게 부러지지 않는 특징이 속수무책인, 범의 위용 앞에 다시금 오금이 저려왔다. 문고리를 당겨 걸쇠로 걸었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한쪽으로 허물어진 싸리나무 울타리를 떠올리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아랫목에 몸을 구겨 넣었다. 여편네는 그 난리 통에도 잠들어 있었다. 업어 가도 모르는 잠버릇은 여전했다. 벽보는 이불속에서 흥건한 여편네의 체취를 온몸으로 빨아들였다. 그것은 강렬한 본능이 꿈틀거리는 시발(始發)점이었다. 조금 전까지 범의 용맹을 목도하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꿈틀거리도록 전율하지 않았는가. 단숨에 먹잇감을 물고 싸리나무 울타리를 뛰어넘는 배짱을, 벽보는 전달받지 않았는가. 뜨거운 열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황급히 옷을 벗었다. 옷은 거추장스러운 허물에 불과했다. 곰내재에서 교미직전의 수컷 말이 앞세웠던 성기(性器) 못지않은, 자신의 것을 쳐다보며 한편으로 흡족해했다. 이불을 걷어내고, 목표가 분명한 근육질의 알몸을 다독이면서 여편네의 옷을 벗겼다. 잠투정으로 약간의 걸림돌이 되었지만 곧이어 순조로운 진행에 차질 없이 몽롱한 속에서도 도와주고 있다고 느껴졌다. 마침내 실오라기 한 점 없는 벌거숭이가 되자 벽보는 거침없이 덤벼들었다. 여편네의 눈이 반짝 떠졌다. 이제껏 맛보지 못한 높고, 두텁고, 억세면서, 하얗게 익어가는 밤의 정수리 같았다. 또한 계곡으로 내려온 비구름에 의해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를 타고 넘는 잉어의 허연 배때기 같다고 느껴졌다. 이 양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잠시 여편네가 의아해하며 우리 서방(書房)인가, 확인하기도 했다. 면상(面相)은 맞았지만 눈빛은 찌를 듯 기운에 차있었다. 두어 번 더 짝짓기는 이어졌다. 여편네 몽실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지만 머릿속은 서방 벽보와 떨어질 수 없었다. 물줄기를 타고 승천(昇天)하는 이무기의 몸짓이 이토록 찬란했을까. 범이 다녀갔다는 이유만으로 벽보는 범의 기운을 옹골차게 꿰어 찼고, 몽실은 잠꾸러기처럼 허당 했던 나날의 변화를 꾀하는 계기가 된 듯도 했다. 사실 벽보는 녹봉(祿俸)을 먹는 관리였다. 그렇다고 일자무식한 벽보에게 대단한 소임(所任)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계절 단위로 말이나 쌀, 보리, 명주, 돈 따위가 제공되었다.벽보는 두마국의 절대권좌 합하의 어린 날이 녹아있는 측간(廁間)지기였다. 합하로 등극할 수 있는 자격에는 형제들 보다 서열에서 밀렸지만 측간에 얽힌 신화적인 영웅담으로 당당히 절대권좌를 차지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벽보는 자신의 직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닦고 문지르고, 헐거운 것을 팽팽하게 하면서 게을러지지 않게 한 덕분에 측간은 광이 났다. 어느 누구도 측간 근처에 얼씬 거리지 않지만 합하만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측간의 영웅담은 이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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