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가면 1984년에 중요민속자료 제188호로 지정된 전통민속마을인 성읍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조선 태종 16년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된 정의현청이 세종 5년 이곳으로 옮겨진 후 500여 년 동안이나 현청 소재지였다. 이와 같이 수백 년 동안의 도읍지답게 현재에도 조일훈 가옥, 고평오 가옥, 이영숙 가옥 등 수많은 집들이 조선시대 도시 주거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마을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 의해 한국인이 꼭 가보아야 할 관광지 100곳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조선 중기 실학자 이중환의『택리지』「복거총론」에서는 이 마을에 많은 관료들이 귀양 왔으나 한 번도 해난을 당한 적이 없었으니 이는 임금의 덕이 여기까지 미쳐 모든 신들이 도왔다고 하면서 마을 풍속에 대해 극찬하였다. 제주도의 모든 지역이 그렇듯이 태조산은 한라산(1,947m)이다. 그런데 성읍마을의 주산을 일부에서는 북쪽의 영주산(320m)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영주산은 그냥 바람을 막아주는 배산(背山)의 역할로만 생각해야지 그쪽으로부터 지기(생기)의 공급은 되지 않는다. 이는 계수즉지(界水則止)란 풍수 원칙에 따라 땅속으로 흐르는 지기맥은 물을 건널 수 없으므로 영주산과 마을 사이에는 천미천이라는 개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마을로 내려온 용맥은 영주산이 아닌 따라비오름(340m)에서 모지오름(306m)을 거쳐 서쪽으로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18세기에 만들어진 고지도에서도 마을의 중심인 동헌(일관헌)이 동남쪽을 향하고 있다. 서쪽의 따라비오름을 주산으로 봤을 때 좌청룡은 모지오름(306m)에서 영주산을 지나 모구리오름까지가 되고, 설오름(230m)에서 갑선이 오름(160m)이 우백호가 되며 천미천 너머 금형의 남산봉이 안대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읍마을은 여러 봉우리들이 마을을 감싸주고 있어 장풍국(藏風局)을 만들어 주고 방벽 역할을 해줌으로써 외부의 침입이 없다고 하여 병화불입지지(兵火不入之地)로 불리었다. 마을의 수세는 한라산 중턱에서 발원한 천미천이 마을 북쪽에서부터 동쪽 그리고 남쪽 면까지 완전히 감싸주고 우측(서쪽)에서 흘러나오는 산수왓천과 마을 앞에서 만나 신천리 해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마을 뒤편 북서쪽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천미천은 성읍마을의 공배수((拱背水)가 되니 마을의 생기를 한 번 더 가두어준다. 풍수에서는 물은 곧 재물과 연관지에 해석하는바, 성읍민속마을 실천계획도인「瀛洲圖式」에서 이 마을은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도내갑부지지(島內甲富之地)라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3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는 성읍마을은 풍수형국상 행주형국으로 그 특성상 과거부터 마을 안쪽에는 우물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형국의 완성도를 위해 앞쪽의 남산봉은 닻이고 마을 가운데 60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돛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풍수에서 행주형국은 부(富)의 발복이 크다고 해석한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마을이 행주형국의 뜻에 부합하듯 마을에 큰 인물은 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주민 모두가 경제적으로는 풍족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