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에는 왕의 곁을 지키거나, 혹은 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스크린 속 인물들의 비장한 결단과 충심을 보며 우리는 가슴 뭉클함을 느끼곤 하죠. 그런데 멀리 영화관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곳, 영천이야말로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었던 ‘단종의 시대’를 몸소 겪어낸 진짜 ‘왕의 남자’들이 숨 쉬던 무대이기 때문입니다.오늘 ‘영천문화의 재발견’에서는 단종을 위해 목숨과 명예를 걸었던 두 인물, 대전(大田) 이보흠과 스스로를 단종을 지키지 못하고 달아난 사람이라고 자신 손으로 묘비에 새긴 정재 조상치의 흔적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먼저 소개할 인물은 영천 이씨의 자랑이자, 순절의 상징인 대전 이보흠 선생입니다. 그는 세종 시대에 과거에 급제해 능력을 인정받은 엘리트였습니다. 하지만 수양대군(세조)이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그는 순흥 부사로 재직하던 중, 유배 중이던 대전 이보흠은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합니다. 영천의 선비들과 함께 거사를 준비하던 그의 결단은 단순히 한 개인의 충성심을 넘어, 유교적 정의를 실천하고자 했던 영남 선비 정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비록 거사는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지만, 전문가들은 그를 ‘실패한 혁명가’가 아닌 ‘시대를 깨운 양심’으로 평가합니다.이보흠이 불꽃 같은 저항을 선택했다면, 포인 조상치 선생은 ‘침묵의 저항’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그는 집현전 학사 출신으로 세종과 문종의 총애를 받던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습니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자, 조상치는 미련 없이 관직을 버리고 영천으로 내려왔습니다.그는 자신이 직접 구한 자연석에 가공하지 않은 채 직접 ‘노산 조포인 조상치지묘(魯山朝逋人曺尙治之墓)’라 써서 미리 묘비를 준비했다. ‘단종에게서 달아난 사람(포인)’이라 부르며,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단종이 있는 북쪽을 향해 절을 올리며 남은 생을 보냈습니다. 영천에 남은 그의 흔적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권력의 달콤함을 버리고 영천의 산수 속에 숨어 지냈던 그의 삶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절개를 보여줍니다. 이보흠이 순흥 부사로 있을 당시 아들 이환(李) 역시 거사에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거사가 실패로 돌아간 뒤 이보흠과 함께 처형되거나 유배되는 비극을 맞이했으며, 이는 영천 지역 문중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영천 대전동에 있던 이보흠 선생의 집터는 나라에서 몰수하여 연못(파가저택, 破家瀦宅)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가혹한 처벌을 받았습니다.우리는 왜 지금 이 시점에 이보흠과 조상치를 기억해야 할까요? 영화 속 영웅들은 화려한 액션으로 관객을 사로잡지만, 우리 고장의 인물들은 ‘옳은 길’을 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실존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영천은 단순히 포도가 맛있고 별의 도시, 한방의 도시를 넘어, 단종이라는 비극적인 왕을 끝까지 가슴에 품었던 ‘의리의 도시’입니다.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도잠서원에는 현재 이보흠 선생이 모셔져 있는데, 그 곁을 지키며 함께 고난을 겪은 아들 이환의 이름은 공식적인 제향 외에도 영천 이씨 문중의 대전실기(大田實紀) 등을 통해 그 충심이 기록되어 전해집니다. 정재 조상치 선생의 묘지가 있는 영천군 대창면 한번 들러 영화 속 주인공보다 더 멋진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건 어떨까요? 아니면 영천시내에 있는 영천역사박물관 읍성전시관(조양각 옆)에서 열리고 있는 정재 조상치 관련 ‘창녕조씨’ 전시회를 한번 둘러보는게 어떨지......이것이 바로 ‘영천문화의 재발견’이자,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일 것입니다.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6-04-25 07:57:57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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