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at! 나는 무엇인가요? 나는 나의 영혼과 몸의 결합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몸은 소위 사대(四大)라고 하는 흙, 물, 불, 바람의 요소가 뭉쳐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게 되면 제일 먼저 바람의 기운인 숨이 멈추게 되고 사망선고를 받습니다. 이어서 불의 요소가 사라지면서 싸늘하게 식은 시체가 되죠. 누군가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눈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땅에 묻히면 물의 성분이 빠지면서 딱딱한 뼈들만 남게 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해골마저도 흙의 성분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화장(火葬)을 하게 되면 한 줌 재 밖에 없지만 말입니다.살아 있다는 것은 이 네 가지 요소가 적당한 유기적 관계를 통해 유지된다는 뜻이죠. 30조개 이상의 세포로 형성된 나의 육신은 그 세포가 생장할 때는 탱탱한 젊은 모습이다가 세포의 활동이 무디어지게 되면 쪼그라들어 주름진 노인이 됩니다. 어린이든 청장년이든 노인이든 그 몸속에 정신이 깃들면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존재하는데, 그 시기에 따라 정신, 즉 마음도 달라집니다.그럼 그 정신은 어떻게 형성될까요? 온전한 상태의 육신 중 눈, 귀, 코, 혀, 피부의 다섯 감각을 통해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접촉하면서 좋다는 생각이나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왜 좋다 싫다 하는 마음이 일어날까요? 이 두 가지 분별하는 생각은 의식 속에 축적된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일어납니다. 그리고 또다시 좋은 것은 유지하려 하고 싫은 것은 버리려 하는 분별을 강화하면서 나의 의식을 덧붙여 만들어갑니다. 의식이 깨어있는 동안은 이러한 좋고 싫음과 옳고 그름의 정신활동이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순간순간 날마다 경험의 세계가 계속 보태어지니 어제 마음이 다르고 오늘 마음이 다른 거지요. 어제의 나를 보고 오늘의 나를 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렇게 육신도 정신도 계속 달라지는데 어느 순간의 나를 나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을까요? 존엄한 나를 찾으려 하는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게지요. 10살 때의 나도 나인 것이며, 60살의 나도 나라고 하겠지만 엄밀히 비교해보면 몸도 정신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웰빙(Well-beingwkf 잘 사는 것)의 끝이랄 수 있는 웰다잉(Well-dying 잘 죽는 것)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한 것입니다. 어쨌든 이 몸과 정신이 끝없이 변화하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함으로서 무상(無常), 무아(無我)를 체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상경극목천이 본관이다. 손천일과 더불어 같은 시간에 순사(殉死)하였다. 우재룡이 무기를 구입하기 위하여 대구로 떠나면서 상경극 등에게 “우리들의 사실과 기밀은 누설되기 쉬우므로 오늘 저녁 해질 무렵에 여러 사람들은 서쪽의 어느 마을로 갔다가 인정(人定)1)1) 인정(人定) : 조선시대 치안 유지를 위해 실시한 통행금지제도. 매일 밤 10시경에 28번의 종을 쳐서 성문을 닫고 통행금지를 알렸는데, 이를 인정이라 했다. 한편, 매일 새벽 4시에 33번의 종을 쳐서 통행금지 해제를 알렸는데, 이를 파루(罷漏)라고 하였다. 한양에 천도한 태조 이성계는 이듬해인 1395년(태조 4)에 도성을 쌓고 4대문과 4소문을 내고, 8개의 문을 종루의 종소리에 맞추어 개폐하도록 하였다. 종루는 서울 한복판인 현재의 종로와 남대문로가 교차하는 네거리에 설치하였다. 인정과 파루, 그밖에 도성 안에 큰 화재가 났을 때와 같은 경우에 종을 쳐서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다. 인정 때 28번, 파루 때 33번의 종을 울리는 것은 불교의 교리와 관계있다. 인정은 우주의 일월성신 28수(宿)에 고하기 위하여, 파루는 제석천(帝釋天)이 이끄는 하늘의 33천(天)에 고하여 그날의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치는 것이다. 인정과 파루를 알리는 제도가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에 시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사』권7에 “충혜왕 3년 정월부터 종루의 종을 쳐도 울지 않는다.”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고려 때에도 이와 같은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인정과 파루제도는 조선시대에 비롯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398년에 한성에 종이 걸렸을 때 개국공신 권근(權近)이 종명(鐘銘) 서문에서 “① 새 왕조의 개국이라는 큰 공업(功業)을 후세에 전하고, ② 아름다운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후세 사람들의 이목을 깨우치게 하며, ③ 넓은 도시와 큰 고을에서 새벽과 저녁에 종을 쳐서 백성들의 일하고 쉬는 시각을 엄하게 하니 종의 용도가 다양하다.”라고 하였다. 한편, 인정 이후에 통행하다가 적발되면 경수소(警守所)에 구금하고, 이튿날 곤장을 때렸는데 형벌량은 10도(度)에서 30도까지 어긴 시각에 따라 달랐다. 때에 다시 동쪽을 향해 어느 곳으로 가서 몰래 엎드려 있으면 우리들은 길을 돌아 어느 곳에서 잠을 자고 이튿날 다시 우리들이 합류하기로 하자.”하고 나섰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은 우재룡의 계책을 좇지 않고 동화사에서 잠을 자다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원문〉尙敬極은 木川人이라 與孫天一노 同時殉死하다 此時禹在龍이 以武器購入次로 入大邱할새 臨發에 謂敬極等曰吾等之事機易爲漏泄하니 今日夕陽에 諸人이 西去某村某地하야 人定時에 復東向去某地하야 潛伏하면 吾等은 回宿某處하고 明日復合코져 爲期而去하다 諸人이 不從在龍之謀하고 因宿桐華寺라가 皆被殺하다 <山南倡義誌 卷下68~69p>尙敬極 義士 略歷(상경극 의사 약력)尙敬極(상경극)은 관향은 木川(목천)이라 孫天一(손천일)과 같이 순사하다 이때에 禹在龍(우재룡)이 무기를 구입하고저 대구로 가면서 部下(부하)들에게 約定(약정)하기를 今日(금일) 夕陽(석양)에 諸人(제인)은 西村(서촌) 某地(모지)까지 가서 留宿(유숙)할 의사를 보이고 人定時(인정시)에 다시 동으로 某地(모지)에서 숙박하고 明日(명일)에 서로 만나도록 하였더니 그 사람들이 약속을 어기고 桐華寺(동화사)에 留宿(유숙)하다가 전사하다 <山南義陣遺史51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