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군 월항면에 가면 지난 2007년도에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국가민속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된 한개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1450년경 처음 입향하여 개척한 마을로 그 후손들이 모여 살고있는 성산이씨 집성촌이다. 한개라는 마을 이름은 ‘한’은 크다는 뜻이고 ‘개’는 개울을 의미하는 말로 과거 이곳에 큰 개울 또는 나루가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전통 민속 마을답게 현재까지도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10동의 건축물과 수십 호의 전통 가옥들이 짜임새 있게 잘 배치되어 있으며 대부분이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한개마을은 풍수 원칙에 따라 구성이 이루어져 있으며 상류층 주택은 주로 마을 안쪽에, 서민층 주택은 마을 어귀 입구에 배치하여 양반층 가옥들이 장풍(풍수)에 유리한 곳에 입지하고 있다. 그리고 선비의 고장답게 17세기부터 많은 과거 합격자가 나와 대과에 9명, 소과에 24명을 배출한 조선시대의 대표적 반촌마을이다. 공조판서를 지낸 응와 이원조(李源祚), 성리학자이신 한주 이진상(李震相), 국채보상운동의 선도자이신 대계 이승희(李承熙)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다섯 분 등 이외에도 수많은 인사가 이 마을 출신이다. 이곳은 전통 한옥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토석(土石)담이 잘 어우러져 조선시대의 생활상과 숨결이 그대로 남아있는 박물관과 같은 마을로 문화유산으로서 매우 가치가 높다. 그동안 주로 마을의 입지와 전통 건조물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진행되어왔으나 2004년에는 성주군에서 지세 및 인문환경, 역사와 인물, 전적, 가옥구조, 민속 등을 조사하여 [종합학술조사보고서]를 발간하였다. 2009년 성주군에서는 지역을 대표하는 명승지 ‘성주 10경’중 제7경에 한개마을 돌담길을 선정하였다.이곳의 산세는 백두대간 줄기인 김천시 대덕산(1,290.7m)에서 동남쪽으로 하나의 지맥을 뻗어 수도산(1,310m)을 일으키고 여기서 다시 북동쪽 다시 동남쪽,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내려와 마을 뒤 영취산(331.7m)을 일으켜 주산이 되었다. 좌우 용호는 주산에서 뻗어 나온 본신 용맥으로 마을을 잘 감싸주니 장풍국(藏風局)을 이루고, 안산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백천 넘어 우뚝 솟은 성산(383.4m)의 한쪽 자락(76m)이다. 수세는 백호 자락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마을 우측을 감싸며 흘러나오고 좌측 청룡 자락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마을 입구 어귀에서 합류하여 백천에 합류 후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좌측 청룡 자락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바로 직류하지 못하게 마을 앞쪽으로는 제방 둑을 쌓아 마을 전면을 감싸면서 우측으로 흘러가 백호 자락에서 나오는 물과 합수 후 흘러나가게 하였다. 그러므로 마을 앞에 조성한 제방 둑은 마을에 생기가 바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주는 풍수비보(裨補) 차원의 둑으로 그 의미가 크다. 이처럼 한개마을은 영취산을 등 뒤에 두고 앞으로는 백천이 흐르고 있으니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형국이고 안쪽은 높고 마을 입구가 낮은 전저후고(前低後高)의 조건과 더불어 수세가 좋아 최고의 풍수적 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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