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서슬 퍼런 문구는 농민의 피땀 어린 역사가 새겨진 금과옥조이자, 농촌 공동체가 수천 년에 걸쳐 터득한 생존 원칙입니다. 하지만 2026년 오늘, 우리 지역의 군데군데 들녘에서 만난 이 원칙은 더 이상 숭고한 가치로만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 허울좋은 금과옥조가 늙으신 농부의 노후를 가로막고 지방 경제의 맥박을 끊어놓는 ‘서류상의 족쇄’로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의 생각과 출발은 정당했습니다. 지난 2021년 땅 바구미들이 저질러 놓은 LH 사태 이후, 정부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치솟던 시골 땅값과 투기 범죄를 잡기 위해 농지법 개정이라는 강력한 칼을 빼 들었습니다. 농지 취득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고 실경작 의무를 강화하며, 불응 시 처분 명령과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등 법전의 그물망은 촘촘해졌습니다. 한국의 개인 토지 소유 지니계수가 사실상 독점에 가까운 0.8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투기꾼의 손에 들어가는 땅을 막아 농민의 손으로 돌려주겠다는 논리는 물리 법칙만큼이나 명확해 보였습니다.그러나 영천시의 현실은 이념적 정의와 민생의 생존 사이의 괴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영천의 농지 거래 필지 수는 2021년 대비 2025년 52%나 급감했고, 거래 금액은 56%나 증발했습니다. 시장의 온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거래 절벽’이라는 차가운 장벽이 들어섰습니다. 50년 넘게 흙을 파온 고령 농민이 건강 악화로 땅을 내놓아도 문의조차 없는 현실은, 경자유전이라는 대원칙이 현실에서는 은퇴조차 못 하게 막는 가혹한 형벌이 되었음을 시사합니다.이 파편은 농촌 실물 경제 전체로 튀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의 공인중개업소 5곳 중 1곳이 문을 닫았고, 이로 인해 인근 상권의 매출 저하와 상인들의 소득감소로 이어지는 연쇄작용을 합니다. 여기에 토지 거래가 줄어 지방세 수입 급감으로 이어지며 지자체의 재정 운영에도 비상등이 켜집니다. 과거 정치인들이 서류 한 장으로 농업인 자격을 갖추고 농지를 사들여 ‘기대 수익’을 올리던 시절의 폐혜를 바로 잡으려던 규제가, 이제는 선량한 농민과 지방 도시의 생명줄을 죄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했듯, 경자유전의 원칙은 절대 흔들릴 수 없는 가치임이 분명합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자가 농지를 보유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정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급하고 일괄적인 규제 강화가 지역 경제의 숨통을 막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구조적 위기일수록 농지를 투기 자본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만, 그 칼날이 수도권의 투기 광풍과 지방 소도시의 고사 위기를 같은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폭력에 가깝다는 평가입니다. 1950년대 농지개혁이 역사적 정의였다면, 2026년의 정의는 농지가 ‘투기의 놀이터’가 되지 않게 관리하면서도, 농민의 재산권과 지역 경제가 함께 살아나는 유연함을 갖추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지능형 탄력 정책’이 필요한 때입니다. 비농업인의 투기적 보유에는 강력한 제도로 세금을 부과하되, 인구 감소 지역에 한해서는 거래의 문턱을 낮추어 도시민의 유입을 유도해야 합니다. 또한 공공 농지은행을 통해 은퇴 농민의 땅이 의욕 넘치는 청년 농민에게 합리적으로 이전되는 통로를 넓히는 실질적 대책이 병행돼야 합니다.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삶의 기반이자 우리 먹거리의 토대입니다. 그런데 그 토대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된다면 경자유전의 원칙 또한 공허한 구호에 불과합니다. 규제의 칼날은 세우되, 농업 기반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지방의 현 실정을 살피는 햇볕같은 행정이 절실합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서야할 칼날이 무뎌서도 안되지만, 너무 날이 서서 생사람을 잡아서도 안될 법이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