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된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혼자 밥을 짓지 못하게 되는 일이다. 무릎이 꺾이고, 병원 버스를 혼자 타지 못하게 되고, 샤워를 위해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하는 날이 오는 것이다. 그 날이 왔을 때 이 사회가 그 사람 곁에 제대로 서 있을 수 있는가. 오는 27일 전국적으로 본격 시행에 들어가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제도는 바로 그 물음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답이다.한국은 세계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전국 노인 인구 비율이 19.2%에 달하는 가운데, 영천시는 그보다 훨씬 가파른 34.6%를 기록 중이다. 전국 ‘시’ 단위 최고 수준의 초고령 도시라는 타이틀은 자랑이 아니라 절박함의 다른 이름이다. 경북 내륙의 농촌 곳곳이 비슷한 처지다. 청년은 떠나고 노인은 남는 구조 속에서, 돌봄의 수요는 해마다 불어나는데 그것을 감당할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했다.그동안의 복지 행정이 저질러온 가장 큰 잘못은 ‘분절’이었다. 의료가 필요한 어르신은 보건소를, 요양이 필요하면 건강보험공단을, 생활지원이 필요하면 또 다른 기관을 찾아야 했다. 몸 하나에 불편함이 산더미처럼 쌓인 사람이 제도의 미로를 혼자 헤쳐야 했다. 결과는 뻔했다. 집에서 조금만 손을 내밀어 주었으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던 이들이 요양병원 침대를 전전하게 됐다. 이번 통합돌봄 제도는 바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선언이다.영천시가 설계한 ‘영천형 모델’은 주목할 만하다.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한 팀을 이뤄 가정을 찾는 방문의료, 영양 불균형을 해소하는 식사지원, 병원 동행을 위한 이동지원, 낙상 예방을 위한 주거환경 개선까지 — 8가지 특화서비스를 16개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단일 창구로 제공한다. 7억58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400여 명의 수혜를 목표로 한다. 전체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설계다. 분절된 서비스를 하나의 지붕 아래 묶고, 한 사람을 위한 케어플랜을 세밀하게 수립하겠다는 것은 행정의 진화를 보여준다.그러나 총론이 완벽할수록 각론을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전담 인력 없이 겸임 공무원이 복잡한 케어플랜을 촘촘하게 수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농촌의 지리적 특성상 방문 가능 범위도 협소하다. 무엇보다 기초 수급자와 달리 ‘기타 소득 계층’은 가사지원 한 시간에 2만4천 원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 서비스의 혜택이 정작 그것이 절실한 중간 계층에게 닿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제도는 탄생보다 지속이 어렵다. 출범식의 박수갈채가 가라앉고 현장의 일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진짜 싸움이 벌어진다. 전담 인력 확충, 예산의 연속성, 소득 계층 간 접근성 형평 같은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통합돌봄은 또 하나의 복지 슬로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27일, 영천시 16개 읍·면·동에서 동시에 창구가 열린다. 그 앞에 처음으로 서는 노인은 제도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를 찾아오는 것이다. 영천이 내실있게 이 실험을 성공시켜야 하는 이유다. 그 갈림길이 오는 27일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