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내가 죽어 육신이 없어지면 나는 없는 건가? 죽는 순간까지 여섯 감각의 작용으로 형성된 업식(業識), 그 정신은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지옥 · 아귀·축생·인간·수라· 천상이라는 여섯 가지 형태의 세계인 육도와 윤회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에 대한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는 철학적인 관점에서 종교(宗敎)는 그 깊이를 더해 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믿음을 통해 천당이나 극락으로 구원받는 신앙(信仰)이 아닌 본질을 찾아가는 가르침의 입장에서 말이죠. 이 입장에 서면 육도윤회는 온전히 마음의 문제가 됩니다.지옥(地獄)은 괴로움, 고통의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으로 온갖 괴로움을 겪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 증오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부딪치며 살아야 하는 괴로움, 사람이든 물건이든 가지고 싶은데도 갖지 못하는 괴로움,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온갖 가지 괴로움을 지금 내가 겪고 있다면 그 상태가 지옥인 것입니다.그와 마찬가지로 아귀(餓鬼)는 배고픔, 갈증의 다른 이름입니다. 못 먹고 살 때는 배고픔만큼 큰 괴로움도 없지만 요즘처럼 물자가 풍요로운 세상에서는 욕망을 채우지 못하는 마음으로의 갈증이 훨씬 큰 문제입니다. 아귀와 다르지 않게 갈망에 허덕이는 이를 더러 봅니다.축생(畜生)은 어리석음의 상징적 표현이지요. 쥐가 먹이에 취해 쥐덫에 걸린다든지, 소나 돼지가 아무 생각 없이 사육당하는 것은 모두 무지한 탓입니다. 짐승들의 생각 없음을 비웃는 인간들이 의외로 어리석은 짓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는 눈 있는 사람은 다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옥·아귀·축생을 세 가지 괴로움의 세계인 삼악도(三惡道)라 하는데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짓는 세계임이 분명합니다. 나의 몸과 말과 정신의 행위, 마음 씀씀이에 따라 나타나는 거죠. 욕심이 크게 일어나면 분노가 눈앞을 가리고 그로 인해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상태에 빠지지요. 그래서 십악(十惡)을 잘못인 줄 모르고 저지릅니다. 그 결과로 악업(惡業)이 형성되고 악업이 씨앗이 되어 다시 악행이 반복되는 윤회의 수레바퀴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이 세 가지 나쁜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업력(業力)에 끌려가지 않을 강력한 의지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삼악도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커다란 의지, 이것을 원력(願力)이라 합니다. 원력이 크면 클수록 악업의 윤회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김수국본관은 의성이며 청송 사람이다. 조상환과 더불어 이세기를 좇아 경주의 남동대산에서 싸우다 순사(殉死)하였다.〈원문〉金守國은 義城人이요 靑松居人이라 與曺相煥으로 從李世紀하야 戰於慶州南東大라가 殉死하다<山南倡義誌 卷下69p>金守國 義士 略歷(김수국 의사 약력)金守國(김수국)은 관향은 義城(의성)이오 靑松(청송) 出身(출신)이라 慶州(경주) 南東大(남동대)에서 전사하다 <山南義陣遺史514p>김두암본관은 의성이다. 수년 동안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죽을힘을 다했지만 적에게 붙잡혀 의성의 감옥에서 죽었다.〈원문〉金斗巖은 義城人이라 數年間血心死力이런니 被執於敵하야 死於義城獄이라 <山南倡義誌 卷下69p>金斗巖 義士 略歷(김두암 의사 약력)金斗巖(김두암)은 관향은 義城(의성)이오 거소는 미상이라 義城(의성)에서 사형되다 <山南義陣遺史514p>조근백본관은 함안이다. 여러 지역에서 적과 맞붙어 싸웠는데 자못(매우) 정예하다는 칭송이 있었다. 누군가가 조근백이 전사했다고 하는데 전사한 곳은 분명하지 않다.〈원문〉趙根伯은 咸安人이라 對敵各地에 頗有精兵之稱이런니 或言戰死云이고 戰死地未詳이라<山南倡義誌 卷下69p>趙根伯 義士 略歷(조근백 의사 약력)趙根伯(조근백)은 관향은 咸安(함안)이라 전사하였다고 하나 전사지는 미상이라 <山南義陣遺史514p>조근백의사 공훈록1872년 3월 13일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현서면(縣西面) 두현리(豆峴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이명은 조성일(趙性逸)이며, 한자를 달리한 조근백(趙勤伯)을 쓰기도 하였다.1906년 3월 정용기(鄭鏞基)가 경북 영천(永川)에서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조직하자 그 휘하에 들어가 영양(英陽)·청송(靑松)·진보(眞寶) 등지를 전전하며 활동을 벌였다. 그 뒤 이듬해 7월 입암(立岩) 전투에서 정용기 의병장이 전사하고 의진이 해산되자, 은둔하였으나 1908년 6월 20일 자택에서 일군에게 붙잡혀, 현장에서 총살당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김석이본관은 의성이다. 1906년∼1907년 사이 언제나 선두에 나섰는데, 전사했다 말하지만 전사한 곳은 분명하지 않다. 金石伊는 義城人이라 丙丁間에 每以先發노 自薦이러니 或言戰死이나 戰死地未詳이라<山南倡義誌 卷下69p>金石伊 義士 略歷(김석이 의사 약력)金石伊(김석이)는 관향은 義城(의성)이라 전사하였다고 하나 전사지는 미상이라 <山南義陣遺史5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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