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리(15)하명이 가고 난 뒤 추명은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합하로 등극(登極)하는 결말을 머릿속에 예행으로 그려놓았지만, 현실로 다가왔을 때 솔직히 두려웠다. 하명의 주위에는 추명의 엄밀한 지시를 받은 거간꾼들이 포진해 있었다. 시정잡배에 장돌뱅이를 중심으로 언제나 꼬드길 수 있는 몇몇은 수시로 하명을, 사치와 방탕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불철주야 감시해 주었다. 득달같이 추명에게 보고하는 것은 물론이고, 두마국의 장래와 함께한다는 거국적인 원대함도 그들에겐 있었다. 이제 추명이 직접 나설 때라는 것을 떨려오는 심장 박동소리로 알 수 있었다. 먼저 마을백성들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 명분을 각색(脚色)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발품팔이로 끼워 맞춰 보았다. 가장 그럴 듯하게 낙점된 설화(說話)는 역시 측간이 제격이었다. 빈번하게 측간 주위를 배회하며 한(恨)서린 처자가 치렁치렁한 산발로 얼굴을 가리면서 지저분하게 등장하는 귀신을 목격한 마을백성도 여럿 있다고 했다. 신경질적인 분위기를 앞세워 길고 마른 팔과, 가느다란 손목과, 긴 손톱으로 뒷간 일을 보는 사람들의 몸을 만진다고 들었다.맨발에 여기저기 똥을 묻히면서, 포악한 성격을 나타내며 키득키득한 웃음소리가 괴상하게 울려 음산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었다. 측간에 올 때 기척을 하지 않고 거적을 들추면, 귀신이 놀라 긴 머리카락으로 면상을 덮쳐 똥통에 빠뜨린다고 심심찮게 전해져왔다. 처자귀신과 맞서 싸우는 용맹함을 전할 목격자는 궁중의 사생활을 시중하던 여관(女官)중 주용과, 입을 맞추었다. 처음에는 귀신과 싸워 이긴다는 결말을 세웠지만 주용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세자저하, 너무하십니다. 그래도 명색이 귀신인데 산자에게 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렇게 하지요. 천자문을 뗄 열두 살 나이에, 세월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버리면 흐릿하게 만들어져 혹여 말이 딱딱 맞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귀신과 맞선 열두 살 추명세자의 담대함은 마침내 문무를 겸비하여 측간귀신과 맞설 정도가 되었지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비등비등한 싸움에서 똥통에 빠지는 수모를 겪었지만 귀신도 상처투성이로 형색을 숨기게 되었습니다.”어지간한 이야기꾼 못 지 않는 주용의 말솜씨에 추명은 마른 침을 삼켰다. 왜 일찍이 몰랐던가. “세자저하는 똥통에 빠졌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똥 덩어리를 헤치며 공중부양(空中浮揚)으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세자저하의 수발을 위해 찾아 나선 제가 목격했지요. 그때 육신에 달라붙은 똥독을 차돌멩이로 긁어 벗겨내는 고충이 수반이 되었지만 그곳에 있었던 모두는 하나같이, 범상치 않는 두마국의 샛별이라고 입을 모았지요. 측간에 빠진 자는 며칠 안에 죽게 되거나 재액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똥떡을 만들어 측간 앞에 가서 비손하고, 그 떡을 먹으면 재액이 소멸된다고 하여 모두들 똥떡을 먹은 기억이 지금은 어렴풋할지 모르지만, 그때의 열두 살 세자저하는 이미 합하의 기운이 걷잡을 수 없이 뻗쳤나이다.”“허허, 주용의 세치 혀에 무방비 상태가 되는구나.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도록 역시 힘을 써준다면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이제 좋은 날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담하고 터 좋은 곳에 봐둔 측간을 관리할 측간지기로 과묵한 벽보를 임명해서 곧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한 가지 찝찝한 것을 물어보면 되겠는가?”“하명하십시오.”“넷째 동명을 꼭 결단(決斷)해야 하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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