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에 국가데이터처(구 통계청)가 발표한 ‘2025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4점입니다. OECD 38개국 중 33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이 점수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자부심은 입가를 맴돌며 뿜뿜이지만, 정작 우리 개개인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바닥인 실정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위험 신호를 온몸으로 느끼며 받아내고 있습니다.가장 충격적인 지표는 단연 자살률입니다. 2024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9.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는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한 수치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하고 K-콘텐츠가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OECD 자살률 ‘압도적 1위’라는 비극의 주인공입니다.이런 불행의 기저에는 ‘성장’이라는 환상이 남긴 지독한 피로감이 깔려 있습니다. 반세기 만에 흙수저(농업 국가)에서 금수저(반도체 강국)로 변모한 ‘한강의 기적’은 위대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빠르게 달리는 법만 배웠을 뿐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는 법과 실패를 견디는 법을 익히지 못했습니다.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신뢰’는 위험 수준입니다. 정부, 국회, 사회단체를 포함한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49.6%로 떨어지며 50% 아래입니다. 국가 시스템을 믿지 못하면서 개인은 불행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부정정서의 불평등’입니다. 최근 3년 만에 다시 악화된 부정정서 지수는 소득이 낮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높게 나타납니다. 39.8%에 달하는 노인 빈곤율은 성장의 과실이 특정 계층에만 고착화되어 있음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반등하던 청년 취업률마저 꺾이며 사회의 허리마저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제 불행은 무작위적 분포가 아니라, 구조적 균열을 타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집중되고 있습니다.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또 다른 주범은 타인의 삶을 잣대로 자신의 삶을 재단하는 ‘비교 강박’입니다. 아파트값, 대학 서열, 연봉 순위로 서열화된 사회에서 만족은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일 뿐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은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비교 강박에 24시간 연료를 공급하는 가속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반면 행복 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들은 GDP 규모와 상관없이 ‘지금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감각을 공유합니다. 공동체와 이웃에 대한 신뢰가 행복의 인프라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죠. 다행히 우리의 대인 신뢰도가 3년 만에 소폭 상승(55.7%)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붙잡아야 할 유일한 희망의 신호입니다.낙제점은 아니지만 결코 만족할 수 없는 ‘6.4점’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타인의 삶이 아닌 ‘나 자신의 어제’와 비교하는 연습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는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실질적인 생존 전략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섬처럼 고립되지 않기 위해 사회적 관계망을 회복하고 사람 사이의 온기를 나누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불신투성이인 정치적 냉소를 거두고 투표와 공론장 참여를 통해 신뢰의 인프라를 직접 구축해야 합니다. 여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을 부끄럼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벗어나야만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성취가 그 방향이 틀렸거나, 속도가 너무 빨랐던 것은 아닌지 이쯤에서 한번 돌아봐야 합니다. 많은 것을 놓치며 달려온 것은 아닌지, 국가가 제도를 고치는 동안 개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조차 바꿔야 합니다. 개개인의 철저한 각성과 사회의 변화가 맞물려 돌아갈 때, 우리는 ‘행복 후진국’의 오명을 벗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