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 영천시 16개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동시에 문이 열린다. 이름하여 ‘통합지원 전담 창구’. 노인이나 장애인이 그 앞에 서는 순간, 의료·요양·돌봄이 한데 얽힌 복합적인 욕구가 단 하나의 창구에서 해소되기 시작한다.영천시(시장 최기문)가 노인과 장애인 대상 ‘의료‧요양 통합돌봄’ 사업을 3월 27일부터 본격 시행한다고 밝혔다. 총 사업비 758백만 원(국비 50%, 도비 15%, 시비 35%)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은 질병과 부상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시민들이 더 이상 요양병원이나 시설에 ‘갇히지 않고’, 살아온 동네와 집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숫자가 말하는 절박함배경에는 냉혹한 통계가 있다. 영천시 전체 인구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34.6%. 전국 평균(19.2%)을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의료 수요는 갈수록 늘지만 서비스는 분절적으로 제공돼 정작 시민들의 체감도는 낮았다. 의료가 필요한 사람은 보건소로, 요양이 필요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생활지원이 필요하면 또 다른 창구로 — 같은 사람이 여러 기관의 문을 두드려야 했던 구조였다.결과는 불필요한 장기 입원과 시설 입소로 이어졌다. 시 관계자는 “가정에서 조금만 지원이 들어갔어도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던 분들이 결국 입원을 택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설명한다.■ ‘영천형 모델’ 8가지 특화서비스영천시가 설계한 서비스 구조는 크게 보건의료·퇴원환자·일상생활·주거지원 네 축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영천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특화서비스’ 8종이 핵심이다. 방문의료는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한 팀을 이뤄 가정을 찾는다. 의사는 월 1회 이상, 간호사는 월 2회 이상 방문이 원칙이다. 양방과 한방 모두 선택할 수 있다. 식사지원은 영양 불균형이 우려되는 대상자에게 주 1~2회 도시락과 밑반찬을 배달하며 109명을 목표로 한다. 가사지원(1일 최대 3시간)은 장기요양등급 판정 전 발생하는 돌봄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가사 서비스를 제공한다. 혼자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이동지원(월 2회, 최대 3시간)과, 신체 청결 유지를 위한 방문목욕, 이미용 서비스도 포함된다. 주거환경 개선은 34명을 대상으로 1회 200만 원 한도 내에서 낙상 예방 손잡이 설치, 문턱 제거, 화재 예방 설비 지원이 이뤄진다. 퇴원 연계사업은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환자 40명을 대상으로, 퇴원 직후의 돌봄 공백을 메운다.■ 13개 기관, 민·관 협력망 완성시는 지난 1월부터 공모를 통해 8개 사업 분야에 13개 제공기관을 선정했다. 방문의료는 동산의원과 소강한의원이, 식사지원은 종합사회복지관·지역자활센터·시니어클럽이 분담한다. 이동지원은 ‘한사랑동행’과 ‘나눔케어’가 맡는다. 지난 1월 28일에는 유관기관장으로 구성된 ‘통합지원협의체’ 위촉식이 열렸다.영천시 사회복지과 통합돌봄팀 관계자는 “영천 시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살던 곳에서 존엄한 노후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며 “이것이 이번 사업의 출발점이자 도달점”이라고 밝혔다. ■ 신청은 어디서? 창구 운영 방식서비스 신청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 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영천지사에서 받는다. 신청이 들어오면 읍면동 담당 공무원이 통합돌봄 사전조사를 수행하고, 건강상태를 종합해 ‘비해당군’, ‘지자체 자체조사군’, ‘통합판정조사군’ 세 가지로 분류한 뒤 개인별 케어플랜을 수립한다. 이후 ‘지역케어회의’를 통해 서비스 제공이 시작된다.현재 읍면동에는 사회복지직·보건직·행정직 공무원이 겸임 형태로 창구를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 전담 인력이 추가 배치될 예정이다. 서비스 개시 이후 3개월 이내에는 모니터링을 실시해 케어플랜을 재검토하고 필요 시 서비스를 변경 또는 종결한다.■ 남겨진 과제: 인력·예산·접근성의 삼각 딜레마현장에서는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농촌 지역 특성상 서비스 제공기관의 방문 가능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점, 그리고 전담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겸임 공무원이 복잡한 케어플랜을 세밀하게 수립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다. 초기 수혜 대상을 65세 미만 심한 장애인(지체·뇌병변)으로 확대하는 일정도 하반기로 밀린 상태다. 비용 구조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은 본인부담이 없거나 크게 낮지만, ‘기타’ 소득 계층은 가사지원 1시간에 2만4천 원, 방문목욕 1회에 7만7천 원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 서비스 체감도가 소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대목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행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분절된 복지 서비스를 한 사람, 한 지붕 아래에서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행정의 새로운 실험이다. ‘영천형 모델’이 도내 다른 고령 농촌 지자체의 선례가 될 수 있을지 — 3월 27일 첫 창구가 열리는 그 순간부터 평가는 시작된다. 최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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