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지방’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로부터 4년간의 엄중한 권한을 위임받아 지역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축제의 장이, 본질은 생략된 채 거대 담론의 늪과 공천을 둘러싼 비루한 잡음 속에 침몰하고 있다. 눈에 비친 오늘의 우리 지역 정가 풍경은 민주주의의 성장이 아닌, 퇴행과 고사의 현장일 뿐이다. 현재 선거판을 지배하는 것은 주민의 삶과 직결된 세밀한 의제가 아니다. 지역의 해묵은 과제들은 ‘공천’이라는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논리만 무성할 뿐 정작 우리 삶을 나아지게 할 ‘생활 밀착형’ 고민은 설 자리를 잃었다. 더욱 씁쓸한 것은 이번 선거가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에 따른 ‘중간 평가’라 할 만한데 지역은 그런 고민없이 오직 공천경쟁 프레임에 갇혀버렸다는 점이다.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이 아닌 것을 확인하는 것은 좋으나, 지방자치의 존재 이유는 부정당할 수밖에 없다.특히 특정 정당이 압도적 강세를 보이는 우리 지역 정치 생태계의 민낯은 더욱 참혹하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해괴한 공식이 고착되면서, 후보들은 주민 눈높이가 아닌 공천권을 쥐고 있는 권력의 향배에만 온 신경을 곤두 세운다. 본선보다 당내 경선이 더 주목받는 희한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선택권은 거세되고, 정당의 선택이 주민의 의사를 참칭하는 독점 구조가 견고해졌다.그 비뚤어진 구조가 잉태한 결과물이 바로 최근의 ‘공천 잡음’이다. 지역 정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정책 대결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저급한 흠집 내기와 진흙탕 싸움뿐이다. 경쟁 후보의 과거 전력을 문제 삼아 시위를 벌이고, SNS를 통해 증오를 배설하는 행태는 이미 도를 넘었다. 합의를 손바닥 뒤집듯 파기하고 보도자료를 뿌려대며 시비를 자초하는 모습은 유권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더욱 가관인 것은 진흙탕 속 당의 행정 관리 능력이다. 기초의원 후보들의 지역구가 하루아침에 장기판의 말처럼 뒤바뀌고, 접수 내역조차 엇갈리는 혼선은 정당이 공천의 최소한의 기준조차 상실했음을 방증한다. 당 차원의 사전 조율이나 책임 있는 관리는 실종됐고, 후보자 간 감정의 골만 깊어져 지역 정치의 품격이 바닥으로 추락했다.엄중히 묻고 싶다. 공천장을 주기 전, 과연 그 후보가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역량과 품격을 갖췄는지 한 번이라도 냉정하게 따져보았는가. 단순히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채워 세를 과시하는 것이 정당의 책무는 아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어 온 이 정치적 담합과 소모적인 비방전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지방자치의 본질은 결국 주민에게 있다. 주민이 후보를 고를 수 없고 정당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는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는 ‘지방’을 되찾아야 한다. 후보들은 중앙정치에 기대지 말고 지역 현안을 중심에 놓고 주민과 대화해야 하며, 유권자들 역시 냉정하게 ‘내 삶을 바꿀 일꾼’을 가려내야 한다. 이 본질이 훼손된다면, 지방선거는 빈 껍데기의 소란스러운 요식행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