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크고 작은 사건을 취재하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알려주려 애쓰며 삽니다. 살아온 세월 동안 그 사이 세상이 변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 여럿 있지만, 얼마 전 ‘로테이션 소개팅’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제가 구석기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로테이션 소개팅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한 자리에 여러 남녀가 모여 10분씩 상대를 바꿔가며 대화하는 집단 소개팅입니다. 5대 5 소규모부터 30대 30 대규모까지, 마치 리그전처럼 운영되는데, 대화가 끝나면 마음에 드는 상대를 적어 제출하고, 서로를 지목한 커플만 최종 매칭됩니다. 참가비는 여성 남성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SNS에 후기 영상이 퍼지더니, 취미 플랫폼 플립에서만 1년간 신청 건수가 10만 건에 육박했다고 합니다.처음엔 “이게 소개팅이야, 면접이야?” 싶었죠. 10분. 라면 한 그릇 먹는 시간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 평생을 반려할 후보를 평가한다는 발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과는 너무 거리가 멀지 않은가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저도 취재원 만나 30분 정도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어느 정도 파악합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가는, 어쩌면 우리가 오래 믿어온 신화인지도 모릅니다.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지금 2030 세대가 처한 현실을 봐야 합니다. 지인의 소개는 씨가 말랐습니다. 다들 바쁘고, 주변 네트워크는 좁아졌으며, 소개를 부탁하는 행위 자체가 어딘지 낯 뜨겁게 느껴지는 세상입니다. 그렇다고 결혼정보회사의 문을 두드리기엔 아직 이른 것 같고, 앱은 신원도 불분명한 데다 감정 소모가 많습니다. 일대일 소개팅? 거절하거나 거절당하는 장면을 직접 연출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피로합니다.로테이션 소개팅은 이 모든 불편함을 깔끔하게 제거해 주죠. 참가비 몇 만 원에 한 번에 열 명 안팎의 이성을 만날 수 있고, 매칭이 안 돼도 “에이, 겨우 몇푼에 시간 날린 거” 라고 털어버리면 그만입니다. 이쯤 되면 이건 소개팅이 아니라 리스크 헤지입니다. MZ세대가 가성비를 사랑한다고들 하는데, 그 논리가 드디어 연애 시장에도 상륙한 것입니다.최근에는 더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전시 공간인 ‘그라운드시소’가 개최한 ‘시소 애프터’는 같은 작품을 고른 사람끼리만 만나게 하는 취향 기반 소개팅인데, 경쟁률이 무려 117대 1입니다. 단순히 “남자 여자, 비슷한 나이”를 묶는 게 아니라, 감성과 가치관의 결이 비슷한 사람을 사전에 필터링해서 연결한다는 발상입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와인파티’, 내향인끼리 모이는 ‘내향인 파티’도 성황 중이랍니다. 소개팅도 이제 세분화·취향화의 시대입니다.이게 단순한 유행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서로 감정의 온도가 비슷한 사람을 찾아나서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공통 취미가 있어도 온도가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일의 피로를 이 세대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더 직접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자기와 맞는 사람을 탐색하는 것입니다.물론 10분으로 사람을 모두 알 수 있느냐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묻습니다. 혹시 오랜 시간 들여 사귀다 결국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경험이 없었던가요. 시간 길다고 사람을 잘 아는 건 결코 아닐겁니다. 10분의 시간이 짧다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사랑이 낭만에서 효율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탄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덜 상처받고, 덜 소모되며, 더 솔직하게 자신과 상대를 마주하려는 시도가 나쁜 건 아니지 않을까요. 어쩌면 주어진 10분짜리 솔직함이, 수개월짜리 착각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시계 소리가 울리면 상대가 바뀝니다. 그게 차갑다고요. 글쎄요. 살면서 배운 게 있다면, 세상은 늘 우리의 알량한 낭만보다 먼저 움직인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