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기록되지 못한 침묵 속에 더 뜨거운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1919년 기미년, 영남 지역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대구 덕산정 시장의 만세 운동. 그 만세운동의 중심에는 영천 신녕면 매양리 출신의 이성근(李成根) 스님과 화산면 매산리 출신의 박창호(朴昌鎬) 스님이 있었습니다.지난 3월 30일, 영천 야사동 용화사에서 봉행되는 제3회 다례제는 단순한 종교 의례를 넘어, 영천의 독립 성지를 복원하고 고향의 품으로 모셔오는 역사를 되세기는 자리입니다.야사동 용화사가 105년 전 독립의 상징인 태극기를 직접 제작했던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입니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와 칼날이 번뜩이던 그 시절, 두 스님을 비롯해 10분의 스님들이 이 법당에서 밤을 지새우며 태극기를 그렸습니다.그 태극기들은 1919년 3월 30일, 대구 보현사 인근 덕산정 시장의 구름 같은 인파 속에서 장엄하게 휘날렸습니다. 신녕과 화산과 화산 출신 스님들이 피워낸 독립만세의 불꽃이 대구 전역을 흔드는 사자후로 승화된 것입니다.신녕 매양과 화산 매산의 이성근 스님과 박창호 스님은 먼 곳의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흙을 밟고 우리와 같은 물을 마시며 자라난 ‘우리 이웃’이었습니다. 신녕면 매양리와 화산면 매산리라는 구체적인 본적지는 이들이 영천의 정기를 이어받은 당당한 주역임을 증명합니다.“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불교의 자비 정신은 일제 강점기라는 도탄의 시대 속에서 항일 투쟁이라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났습니다. 용화사에서 태극기를 만들며 그들이 염원했던 것은 단순히 외세의 퇴각이 아니라, 고향 영천의 이웃들이 억압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대동(大同)의 세계였을 것입니다.“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안타깝게도 이들의 투쟁과 역사적 가치는 오랜 시간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용화사가 벌써 3년째 정성을 다해 모시는 다례제는 “우리는 당신들을 결코 잊지 않았다”는 지역 사회의 응답이자 약속입니다.이번 제3회 다례제는 특히 의미가 깊습니다. 두 스님이 영천 출신이라는 점과 태극기를 제작한 장소가 바로 이곳 용화사였다는 사실이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야사동의 고즈넉한 사찰에서 피어오르는 향연(香煙)은 100여 년 전 태극기를 그리며 숨죽였던 그날의 긴장감과 뜨거웠던 애국심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해줄 것입니다.3월 30일은 영천의 자부심을 깨우는 날이자 우리 지역의 자부심을 확인하는 길입니다. 신녕과 화산의 두 스님이 심었던 독립의 씨앗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숲이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3월 30일, 영천 야사동 용화사에서 봉행되는 ‘제3회 이성근·박창호 스님 추모 다례제’는 단순한 종교 의례를 넘어선다. 이는 2020년 뒤늦게나마 정부로부터 애족장(건국훈장)을 수여받으며 그 공훈이 공식화된 두 영웅의 넋을 비로소 고향 영천의 품으로 온전히 모셔오는 역사적 복원 작업의 정점이다.이번 다례제를 기점으로 두 분의 숭고한 희생이 지역사에 수록되고, 그들이 태극기를 만들었던 용화사가 불교독립운동의 성지로 확고히 자리 잡기를 기대합니다. 잊힌 영웅을 찾아내어 기록하고 기리는 일, 그것이 바로 ‘의병의 도시’ 영천이 미래 세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품격 있는 유산입니다. 107년 전, 용화사에서 태극기를 그리며 밤을 지새웠던 두 청년 스님의 숨결이 오늘날 영천의 번영과 안녕을 지켜주는 등불이 되기를 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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