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풍경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헐뜯는 말, 근거 없는 의혹, 감정이 뒤섞인 진영 논리. 6·3 지방선거를 앞둔 지역도 예외가 아닙니다. 언제가 될 지는 정확히 감을 잡을 수가 없지만 공천을 놓고 SNS 공간에는 후보를 겨냥한 흑색 선전이 넘쳐나고, 정작 정책 토론은 사라진 느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가 보면 문제의 뿌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텃밭 정치’입니다.영천은 오랫동안 특정 정당의 텃밭으로 불렸습니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굳어진 지 오랩니다. 그러다 보니 선거의 경쟁 축이 정당 대 정당, 정책 대 정책이 아닌, 공천권을 쥔 당내 실세로 이동합니다. 시민들에게 공약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당 내부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구조. 이 기형적 문법이 영천 선거판을 수십 년째 지배해 왔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후보들은 시민을 향한 설명보다 당내 줄 세우기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습니다. 민심보다 당심이 먼저인 역설이 반복되는 것입니다.우리의 피로감은 누적됐습니다. 시민들은 선거 때마다 묻습니다. “이번엔 누가 공천을 받을까.” 정책이 아니라 공천 결과가 화제의 중심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선거의 본질이 비틀렸다는 증거입니다. 후보의 비전을 논하기 전에, 누가 줄 서는데 유리한 자리를 잡았는지부터 따집니다. 그 결과 선거는 지역의 미래를 선택하는 과정이 아니라, 기득권의 배분을 추인하는 절차로 전락합니다. 이런 선거에서 진정한 승자는 없습니다. 후보도, 시민도, 지역도 모두 소모될 뿐입니다.공천 싸움이 격화될수록 SNS의 언어는 더욱 거칠어집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글들이 감정의 배설구로 기능합니다. 검증이 아닌 비난, 논거가 아닌 낙인. 작은 도시일수록 그 상처는 오래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러니 선거가 끝난 뒤에도 지역 공동체의 균열은 잘 봉합되지 않습니다. 서로를 향한 불신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서로 간의 벽으로 남습니다. 공천 싸움이 남긴 파편은 결국 시민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는 것입니다.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지역 정치 지형을 무시하고 정책만 논하는 건 이상론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상론이라도 이상을 말하지 않으면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선거판을 지켜보면서 확인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유권자가 달라지면 후보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시민들이 공천 결과에 아무런 비판없이 추종할 때, 후보들은 시민을 향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반대로 유권자가 정책을 묻기 시작할 때, 비로소 후보들은 답을 준비합니다.지금 영천에 필요한 건 거대한 제도 개혁이 아닙니다. 아주 단순한 전환입니다. 후보에게 “당에서 공천 어떻게 됐어요?”가 아니라 “영천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겁니까?”를 묻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역 의료, 청년 유출, 노령화 대책, 도심 공동화 등등 영천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는 공천 싸움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영천의 인구는 해마다 줄고 있고, 지역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 절박한 현실 앞에서 누가 공천을 받았는지를 따지는 것은 너무도 한가한 일입니다. 정책 토론 없이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지역 발전의 답은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이제부터라도 갈등을 부추기는 선거가 아니라, 신뢰를 쌓는 선거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지금 지역의 정치권이 귀 기울여야 할 것은 상대 후보가 아니라, 이미 지쳐가고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입니다.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미 많은 시민들이 공천싸움에 식상해 있습니다. 시민들은 이제 텃밭이 아니라 미래를 원합니다. 다가오는 6·3 지방선거가 기억에 남는 선거가 되려면, 그 중심에 정책이 있어야 합니다. 품격 있는 선거는 후보가 만드는 게 아닙니다. 바로 묻고 따지는 유권자가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