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역사박물관 소장의 ‘대전화상주심경’은 불교계 경전인 ‘반야바라밀다심경’ 주석서 중의 하나로, 15세기 중국 원판(元板)을 번각(飜刻)하여 간행된 것이다. 여기서 ‘반야심경’은 동아시아 불교의 중요한 경전으로 폭넓게 수용되었으며, 또한 전통기록물시대 찬술된 주석서가 100종 가까이 확인된다.박물관에 소장된 ‘대전화상주심경’의 형태사항을 보면, 앞‧뒤표지에는 각각 ‘鑑 十五/通鑑 卷之十五’가 묵서(墨書)되어 있으며, 책의 크기는 세로가 28.4㎝이고 가로는 16.5㎝이다. 목판(木板)으로 간행된 본 책의 판식(版式)을 보면, 변란(邊欄)의 형태는 사주쌍변(四周雙邊)이며 반곽(半廓)의 크기는 20.5×13.0㎝이다. 판심부(版心部)에는 어미(魚尾)와 판심제(版心題) 그리고 장차(張次)가 확인되는데, 어미의 형태는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고, 판심제는 ‘心經’이다. 본문의 행자수는 10행 18자로 되어있다. 본 자료의 구성을 보면 본문이 바로 시작되며 권말(卷末)에 서문‧발문‧간기 그리고 시주질 및 다라니(陀羅尼)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 서문은 후대에 개장(改裝)하는 과정에서 잘못하여 권말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권말에는 시주자(施主者) 그리고 화주(化主) 및 간기(刊記) 등이 확인되는데, 이를 통해 간행시기와 간행지 등을 알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권말의 다라니는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와 ‘옴’자 진언(眞言)이 있는데, 이는 다른 판본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대전화상주심경’의 서문은 대전선사(大顚禪師) 요통(了通)이 쓴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저 심경(心經)은 미처 들어 말하기 전에 이미 분명하거늘, 어찌 주석을 달고 풀이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 세존께서 세상에 나셔서 여러 종류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여러 종류의 법을 설하셨다. 다섯 시기로 교화를 펴시고 다섯 종류로 제목을 세우셨다. 현묘한 문을 널리 열어 뭇 중생들을 이끄시고 구제하셨다. 다섯 번째 시기에 이 반야의 최고로 뛰어난 큰 경전을 설하셨다. 당나라 현장삼장(596-664)이 황제의 명을 받고 번역을 완성한 후, 이 땅[중국]에 유통되었는데 모두 600권에 이르렀다. 空을 담론함은 한결같지만, 법을 드러냄은 여러 방법이 있다. 그 가르침 중 가장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것은 54구, 267자인데 그 문장이 너무 곧아서 도리어 깨치기가 어려웠다. 요통(了通)은 어리석고 미련함에도 불구하고 좁은 소견으로 부처와 조사의 말씀과 가르침을 인용하여 주해를 하였다. 어찌 모든 진리를 통달한 이들에게 전하려 함이겠는가. 다만 근기가 낮은 사람들을 접견하여 인도하고자 바랄 뿐이다. 만약 자기를 마주하고 돌이켜 비추며 보고 들은 것을 궁구할 수 있다면 먼저 견성(見性)을 성취하고 다음으로 원돈(圓頓)에 들 것이다. 결단코 막힘이 없이 끝내 궁극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설령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하였더라도 다시 마지막 구절을 들어볼지어다.” 위 서문에 따르면, 대전선사 요통은 부처와 조사의 말씀과 가르침을 인용하여 ‘반야심경’을 풀이하고 있다. 실제 내용을 보면, 부처의 말씀으로는 ‘금강경’‧‘법화경’ ‘법사공덕품’과 ‘비유품’‧‘대반열반경’‧‘대반야경’‧‘열반경’‧‘능엄경’‧‘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화엄경’‧‘유마경’ 등을 인용하고 있고, 조사의 말씀으로는 승조(383-414), 달마(?-536), 혜가, 승찬, 육조혜능(638-713), 영가현각, 석두희천(700-790), 백장회해(720-814), 약산유엄(751-834), 협산선회(805-881), 동산양개(809-869), 설봉(822-908), 포대화상(?-916), 운문(864-949), 경청도부(867-937), 풍혈연소(896-973), 설두중현(980-1051), 단하자순(?-1119), 불안청원(1065-1120), 보봉유조(1084-1128) 등의 일화와 게송이 인용되고 있다. 또한 제자백가서인 ‘노자’와 ‘장자’ 그리고 ‘논어’까지 인용하고 있다. 이를 정리해보면, 대전화상 요통은 대승경전과 ‘노자’‧‘장자’‧‘논어’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유불도에 능통한 인물이라는 점, 선사들의 일화와 게송을 주로 인용하고 있다는 점, 단하자순의 게송과 불안청원의 게송, 그리고 보봉유조의 게송을 하한연대로 하고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대전화상 요통이 누구인가에 대해, 일반적으로 당나라 때 유명한 선사인 대전보통(大顚寶通, 732-824)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대전보통에 대한 ‘불광대사전’의 소개는 다음과 같다. “그의 법호는 보통, 스스로 대전화상이라 칭했다. 처음에 약산유엄(藥山惟儼)과 함께 혜조(惠照)에게 사사받고 다시 남악회양과 석두희천에게 참알하고 조계의 종지를 깨달았다. 조주(潮州)에 영산선원(靈山禪院)을 창건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가르침을 폈고, ‘반야바라밀다심경’과 ‘금강경’에 대한 석의(釋義)를 지었다. 일찍이 ‘금강경’ 1500편, ‘법화경’과 ‘유마경’을 각각 30부를 서사했다고 한다.”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연구하여 주석서를 짓고, ‘법화경’과 ‘유마경’을 서사했다는 기록을 보면 공(空)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일승(一乘)의 가르침에 대한 신앙도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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