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동 산 1번지 일대. 유봉산 자락의 이 비탈면에는 직각에 가까운 경사면을 따라 수십 톤의 바위 덩어리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이 절벽은 수년째 ‘위험’을 경고받고 있지만, 바위들은 오늘도 그 자리에서 쏟아져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지난달 30일 밤, 19mm 정도 쏟아진 빗물이 유봉산 비탈면을 건드렸다. 서부동 일대에 비가 내리자 산의 바위 무더기 약 5톤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산 아래 도로가 통째로 막혔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다행히’라는 단어가 이토록 무겁게 느껴지는 건, 이 도로가 차와 사람이 상시로 오가는 생활 도로이기 때문이다.영천시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구간은 사실상 정상적인 도로라고 보기 힘든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인근 공장과 컨테이너 시설이 들어서 있어 인명피해 우려가 매우 높은 곳이다. 특히 이곳은 풍화암 지대로 매년 조금씩 돌이 내려오는 상황이며, 경사가 거의 90도에 육박하는 직벽이라 사고 발생 시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또한, 장마철 비가 많이 올 경우 골짜기에서는 폭포처럼 물이 쏟아져 내리고, 배수가 전혀 되지 않아 산아래에는 성인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는 등 지반 약화가 심각한 상태다.한 주민은 “여기 바위들은 언제 떨어져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면서 “몇 년에 걸쳐 수차례 민원을 넣어도 재해지구 지정만 했다는 말 외에는 뚜렷한 반응과 조치가 없다”고 말했다.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주민들은 5년 전에도 이 곳에서 바위와 토사 약 40톤이 한꺼번에 무너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도 도로가 막혔고, 행정은 ‘재해지구 지정’이라는 문서 한 장을 남겼다. 그러나 이후에도 현장은 달라진 게 없다.더 심각한 것은 지반 상태다. 경사면을 지지하던 굵은 나무들이 뿌리째 쓰러지면서 수십 그루를 잘라낼 수 밖에 없었고, 그 자리엔 맨 지반만 남았다. 주민들은 “그나마 지반을 붙잡고 있던 뿌리들이 없어지면서 땅이 더 약해졌다”고 증언한다. 절벽의 조건은 5년 전보다 나빠졌다.주민들은 올여름 장마가 평년보다 길고 강수량도 많을 것이라는 기상 예보에 벌써부터 밤잠을 설친다.그동안 시의 대처가 미온적이었다는 주민들의 비판에 대해 영천시 관계자는 “이미 수년 전부터 안전 조치를 추진해 왔다”고 해명했다. 과거 낙석 방지망과 옹벽 설치를 위해 영천시가 설계까지 마쳤으나, 토지주들의 반대로 사업이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갈등의 중심에는 해당 부지의 토지주 6명이 있다. 이들은 “낙석 방지망 설치는 예산 낭비일 뿐”이라며 “임시방편이 아닌 도로 자체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며 산과 떨어진 곳으로 도로를 개설해 줄 것을 강력 주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시 관계자는 “근본적인 대책(신도로 개설)은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하지만, 당장 장마철이 다가오는데 사람 목숨이 위험할 수 있어 임시방편으로라도 낙석 방지망을 설치하려 했던 것”이라며 “이미 설계까지 끝냈음에도 토지주가 ‘길부터 넓히라’며 반대해 손을 쓸 수 없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올 여름 집중호우가 예고된 가운데, 영천시는 더 이상 안전 조치를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조만간 토지주들을 다시 만나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냐’며 재차 설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주민들은 행정당국이 ‘재해지구 지정’이라는 행정 절차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사유지라는 걸림돌을 넘어서서 시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집행력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5년 전 40톤, 최근 5톤의 바위가 무너진 이곳에서 다음번엔 어떤 ‘불행한 사고’가 터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최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