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리(18)동명은 흐르는 물살을 타는 나룻배에서, 차라리 홀가분한 마음과 앞날이 걱정되는 마음과 감당하지 못할 복잡한 마음들이 뒤섞여 내내 무겁기 짝이 없었다. 계절 하나가 둠짓둠짓 탈바꿈을 하듯 보채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일순간 무너지듯 꽃잎으로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왕벚꽃이 눈을 뗄 수 없는 슬픔이라면, 자신의 청춘은 아예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꽃잎이었다. 울고 싶다면 지금일 것 같았다. 문득 소옥을 쳐다봤다. 나룻배의 방향으로 꼿꼿하게 서있는 궁녀소옥의 표정에서 울고 싶다는 생각이 꼬리를 감췄다. 무슨 호되게 질긴 인연으로 한평생을 첩첩산중에 갇혀 살아야 한단 말인가. 마음에도 없이 마지못해 따라왔다면 돌려보내주고 싶었다. 허나 그러기엔 무지렁이처럼 나약한 자신이 유배지에서 버틸 수 있을지 심히 두려웠다. 소옥마저 자신에게 없다면 어둡고, 춥고, 외로운 앞길은 돌이킬 수 없는 괴로움이 될 것이다. 동명은 마른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호위대장 태열은 왠지 그물과 고기망태기가 신경이 쓰였다. 뜬금없이 새벽 댓바람에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고 고기잡이라니, 거기다가 노질을 하면서 눈치를 살피는 뱃사공의 수상한 낌새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뭉쳐놓은 그물의 부피가 석연찮게 부풀어 올라있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지팡이에서 뽑아든 칼끝을 뱃사공의 목젖에 갖다 대었다.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으로 입에 갖다 붙였다. 태열의 행동은 신속하고 간결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사공의 낯빛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칼을 뽑고 난, 다른 쪽 지팡이의 칼집으로 그물을 쿡쿡 힘을 가하며 찔렀다. 그러자 들켰다고 생각되었는지, 아니면 공격신호라 생각했는지 상체가 맨몸인 자객이 튕겨져 올라 칼을 높이 쳐들었다. 태열은 동명과 소옥의 방어막을 치면서 자객의 요란한 칼을 순식간에 받아내었다. 하마터면 동명의 몸뚱이가 둘로 갈라질 천둥 같은 검법이었다. 나룻배 안에서 중심을 잃은 동명과 소옥은 휘청거렸고, 노질을 멈춘 사공이 한발 물러나있는 사이, 자객은 두 번째 공격을 시도했다. 칼집을 바닥에 버린 태열은 두 손으로 손잡이를 쥐고, 서로 맞서 겨룸의 자세로 칼을 맞대었다. 순간 자객과 눈이 마주치자 누군지 알아보고 말았다. “뒷간지기 벽보 아닌가?” 맞댄 칼을 떼면서 벽보는 씩씩거렸다. “맞습니다. 어느 선례(先例)에 이런 건 없습니다. 왕위계승에 맞춰 후환의 재앙이나 보복을 아예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처단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지금 호위대장님도 무엇이 합하를 위한 충정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게 맡기십시오. 훗날 걸림돌이 될 저놈을 당장 참수하셔야 합니다.”물살에 의해 나룻배가 휘청거렸다. 동시에 네 사람이 배안에서 각자의 보폭으로 중심을 잡았다. 소옥은 한발을 더 벽보 쪽으로 옮겨왔다. “네 이놈 벽보야! 겨우 뒷간지기로 나라의 녹을 먹는 주제에 세자저하에게 저놈이라니, 당장 너의 세치 혀를 잡도리 하지 못하겠느냐?” 소옥의 강단에 태열과 벽보가 주춤거렸고 사공은 노질을 강기슭으로 붙이기 위해 중심이동을 감행하고 있었다. “이건 엄연히 유배지로 무사히 보내라는 엄명이다. 그렇게 합하를 위한다면 엄명 따위는 안중에 없는 게냐? 쥐 죽은 듯이 한평생을 살겠다는 우리의 껍데기인생이 성에차지 않는 것이냐?”서릿발 같은 소옥의 일갈(一喝)이 자호천 억새밭을 관통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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