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가면 운조루라는 고택이 있는데 택호는 영역 내의 큰 사랑채 이름이다. 이는 중국 도원명의 시(詩)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온 말로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조선 영조 52년(1776) 류이주(1726~1797)가 낙안군수로 있을 때 품(品)자 형으로 지은 대규모 저택으로 조선조 양반가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이다. 그는 원래 대구 사람으로 1773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천장지비지(天藏地秘地)의 명당 터에 매료되어 은퇴하면 이곳에 머물 결심을 하고 약 6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건축하였다고 한다. 류이주는 관직 생활 중 대규모 국가 건축공사를 맡아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운조루를 설계하였으며, 공사는 그의 조카인 유덕호(柳德浩)가 책임을 맡았다. 1776년 9월 16일에 운조루 상량식을 가져 6년만인 1782년에 류이주가 용천부사(龍川府使)로 있을 때 완성되었다. 완공 12년 후에 그가 작성한 「장자구처기」에 따르면 최초 운조루는 78칸의 저택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현재는 63칸만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 마을 앞길 건너편에는 운조루의 역사와 삶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물 전시관이 있고, 내부에는 고택에서 300여 년 동안 보관해오던 풍수지리, 운조루 사람들, 기록물, 생활 모습 등 약 15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원래 ‘구례 운조루’였으나 지금은 ‘구례운조루고택(求禮雲鳥樓古宅)’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국가민속문화제 제8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이곳의 산세는 백두대간 줄기인 지리산에서 남쪽으로 하나의 지맥을 뻗어 마산면의 형제봉(907.6m)을 일으키고 계속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토지면의 월령봉(819.5m)을 일으켜 이 마을의 주산이 되었다. 운조루는 월령봉에서 뻗어 내린 산자락 끝을 배산으로 하여 들어서 있고 마을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다. 그리고 마을 뒷산인 병풍산에서 내려오는 지기는 1,000여 평에 달하는 운조루 터를 둥글게 감싸주고 있어 완전한 장풍국(藏風局)을 이루고, 집 앞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도랑과 연꽃단지 저수지의 물은 집안의 생기를 한 번 더 갈무리해준다. 또한 뒷산 좌우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마을의 양쪽을 감싸며 앞쪽의 섬진강에 합류하니 3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어 이 마을에는 늘 생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지형학적으로도 마을 주변의 풍부한 물로 인한 범람원 지역이라 부유물로 형성된 앞쪽의 넓은 들녘은 토지가 비옥해 부자마을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풍수에서는 수관재물(水管財物)이라 하여 물은 곧 재물을 관장한다 하였고, 주변 사신사 중 우백호 역시 부(富)와 연관지어 해석한다. 이 마을 우측으로 뻗어 나온 백호 자락은 그 높이 면에서 완전하지는 못하나 겨울의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주기에는 충분하고, 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서 류이주 가문은 호남의 대표적 거부가 되었다. 이 외에도 풍수가들은 이곳을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모양의 금환락지(金環落地)형 또는 이 집터에서 거북 모양의 돌이 나왔다고 하여 금귀몰니(金龜沒泥)형의 명당으로 이름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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