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의 네 가지 괴로움 중 두 번째는 늙어가는 괴로움입니다. SNS에 돌아다니는 글에 老年(노년)의 네 가지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있더군요. 가난, 고독, 할 일 없음, 노환(老患)의 네 가지는 실상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입니다. 모든 사회문제가 그렇듯이 초고령사회에서 수명연장으로 인해 늘어가는 노인인구의 문제는 마땅히 해결해야 하는 당면과제이면서도 쉽사리 해결되어지지 않을 문제입니다. 노인복지로 풀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사람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 속에 대략적으로 영유아기와 청소년기, 청장년기, 노년기를 거칩니다. 신체가 왕성한 청장년기에는 뭐든지 해낼 것 같은 의욕이 솟아나지만 신체기능이 저하되면서 늙음에 대해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인식은 그 시기나 강도에 있어서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답은 이 또한 의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의식은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형성되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피부로 접촉하는 속에서 좋고 싫음의 판단과 그 판단에 의한 밀고 당기는 행위가 일어나고 그 행위의 반복 속에 습관이 생깁니다. 습관은 점점 굳어서 특정의 고정관념을 만들고 그것이 곧 다른 누군가에 대비되는 ‘나’를 형성합니다. ‘나’[아(我)]를 이야기할 때는 ‘나의 것’[아소(我所)], ‘나의 생각’[아견(我見)]이 포함됩니다. 특히 ‘나의 견해가 옳다.’라는 관념의 벽은 상대적 개념의 ‘너’에 대한 ‘나’ 뿐만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엄청난 고통을 일으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의 금기가 둘 이상 모여서 ‘정치’, ‘종교’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안 맞으면 대뜸 욕하고 수준이 낮다고 폄하합니다. 누구나 몸담고 살고있는 정치종교 사회에서 그 두 이야기를 토론하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회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붓다께서 아상(我相)을 버리는 것이 피안(彼岸)의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임을 강조하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각자 태어나서 지금껏 살아온 만큼 우리는 각자의 아상(我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자기주장이 확고해지고 이것을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늘어난다.’라고 봅니다. 늙음의 괴로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젊어서 열심히 살고 누군가를 위해 헌신했는데도 나이가 들어서 존경받지 못하는 노인의 모습으로 남아야 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 가장 큰 괴로움인 것입니다. 주위의 많은 이들이 나를 존경하고 어른 대접을 해준다면 덜 괴로울 것입니다. 또한 죽음을 향해 늙어 가야 한다는 생각마저 내려놓을 수 있다면 늙음은 더 이상 괴로움이 아닐 테지요. 육신의 노화는 그냥 현상입니다. 실상은 태어나서 죽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현상이지요. 그 현상을 수용하는 내 마음이 고락(苦樂)을 결정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늙음은 결코 괴로움이 아닙니다.오늘로써 올해의 선거판이 끝납니다. 오늘 밤이면 당선자와 탈락자가 갈리게 될 것입니다. 결과가 어찌 되든 제발 민의(民意)를 잘 읽고 그 뜻을 존중하는 어른스런 정치판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수의 선택을 받았다 하더라도 소수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정치인들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도 떠날 수 없는 정치라는 세계에 속해 있는 우리이기에 정치다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탓이려니 하지만, 그래도 이번 당선인들에게 막연하지만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저 평범한 일반 시민의 입장입니다. 崔景七 義士 略歷(최경칠의사 약력)崔景七(최경칠)은 聲七(성칠)의 兄(형)을 따라서 입진하여 兄弟(형제) 활약하다가 兄(형)과 같이 은신하였는데 臂力(비력)이 특수하였기에 崔將軍(최장군)이라고 별칭이 있었다 <山南義陣遺史520p>최차돌의사 공훈록경북 영일(迎日) 사람이다. 1906년 3월 경북 영천(永川)에서 정용기(鄭鏞基) 등이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조직하자 형 최돌이(崔乭伊)와 함께 그 휘하에 들어가 항전을 개시한 이후 정용기 사후에는 그 부(父) 정환직(鄭煥直)을, 정환직 사후에는 다시 최세한(崔世翰) 의병장을 따라 활동을 계속하다가, 1908년 3월 산남의진의 해체와 더불어 활동을 종료한 뒤 형과 함께 중국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황보봉영천이 본관이다. 1907년 정미에 일족인 황보근을 좇아 산남의진에 들어왔으나 그 후의 전말(顚末)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원문〉皇甫奉은 永川人이라 丁未之年에 從族人覲入陣하고 其後顚末不詳이라 <山南倡義誌 卷下72p>皇甫奉 義士 略歷(황보봉의사 약력)皇甫奉(황보봉)은 관향은 永川(영천)이라 丁未年(정미년)에 族人(족인) 勤(근)을 따라서 입진하여 활약하다가 그 후에 은신하다 <山南義陣遺史520p>황보분본관이 영천이다. 일족인 황보봉과 함께 산남의진에 들어왔는데 전말은 황보봉과 같다.〈원문〉皇甫賁은 永川人이라 與族人奉으로 同時入陣하고 顚末同이라  <山南倡義誌 卷下72p>皇甫賁 義士 略歷(황보분의사 약력)皇甫賁(황보분)은 관향은 永川(영천)이라 族人(족인) 奉(봉)과 같이 입진하여 활약하다가 후에 은신하다 <山南義陣遺史5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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