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석천마을에 가면 울산 학성이씨의 근제공 고택이 있다. 이 고택은 학성이씨 11대손인 이의창(1725~1781)이 건립한 파종가집으로 1765년(영조 41) 웅촌면 대대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세운 집이다. 이후 조선 고종 때 한 차례 고치고 1934년에는 안채와 사랑채를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다시 중수하였다. 이의창이 웅촌면 대대리에서 이곳 석천마을로 오게 된 것은 한 풍수가를 도운 선행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웅촌면지」의 기록에 의하면 인근 온양읍 남창리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재물이 불꽃처럼 일어나자 이러한 부를 영원히 누리고 싶은 욕심으로 좋은 묘자리를 구하기 위해 유명한 앉은뱅이 국풍을 모셔 왔다. 이 부자는 그를 데리고 문중 산으로 올라 산소를 살펴보던 중 지관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이곳의 문중 산소는 옮겨야 한다. 그대로 두면 집안에 줄초상이 난다”하면서 빨리 산소를 옮겨야 화를 면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문중 사람들은 그동안 우리 문중이 이 산소 덕분으로 부귀를 누릴 수 있었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너 같은 놈은 호랑이 밥이나 되어야 한다면서 그를 산에 버려두고 그냥 내려와 버렸다는 것이다. 앉은뱅이 풍수는 혼자 내려올 수가 없어 쩔쩔매고 있었고, 마침 국풍이 온다는 말을 듣고 구경 간 의창이 그를 지게에 지고 집으로 모셔와 성심껏 보살펴주었으며 국풍은 그 대가로 근재공고택의 집터를 잡아주었다고 한다. 의창은 이 집에서 많은 부를 일구고 후손들은 여러 명이 벼슬길에 올랐으며 조선조 울산에서는 4명의 장원급제자가 나왔지만 그중 2명이 이 집 출신이다. 이 건물은 1997년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국가 보훈처 지정 현충 시설로 독립운동가 이재락 선생의 생가이기도 하다. 석천마을은 마을 뒤 노방산이 양쪽으로 팔을 벌려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마을 전체가 광주리 모양 혹은 조개 모양을 한 명당 터로 알려져 있다.이곳의 산세는 낙동정맥인 양산시 하북면 정족산(748m)에서 북동쪽으로 하나의 지맥을 뻗어 울주군 웅촌면의 운암산(418.6m)을 거쳐 청량읍의 남암산(544.4m)을 일으킨다. 여기서 다시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와 노방산(258.9m)을 일으켜 본 마을의 주산이 되었고, 석천마을은 노방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이 양팔을 벌려 감싸 안은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뒤산은 말발굽 모양처럼 마을을 둥글게 감싸주고 앞으로는 회야강이 흘러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회야강은 마을 전체를 활처럼 감싸주면서 서출동류로 흘러나가니 최고의 수세 조건이다. 우리나라는 지형적 특성상 북쪽보다는 남쪽이, 동쪽보다는 서쪽이 낮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물의 흐름이 북에서 남으로, 혹은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 현상인 남에서 북으로 혹은 서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지역이 있는데 이러한 지역을 역수국(逆水局)이라 하고 그 안쪽을 대길지로 친다. 풍수에서는 주변의 물길은 혈장을 환포해 주면서 천천히 흘러나가는 것을 최고로 치는바, 역수국은 대부분 경사도가 완만해 유속이 느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