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애들도 다 키웠고 우리도 계모임 같은 것도 좀 해 보자.” 늘 온라인으로나 한두 명만 만나던 친구들과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면서 초등학교 동기 계를 하나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과 좋은 장소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긴장도 풀고 마음속의 이야기도 나누는, 따뜻한 시간이어서 그 동안 쌓인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서로가 발전할 수 있도록 격려와 조언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서로에게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어서 못했던 말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상대방에게 꼭 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 중에서 자주 언급되는 부분이 말 때문에 불쾌감을 느낀 경우였습니다. 저 또한 어떤 상황에서 가장 상처 받는 것은 미묘한 상황의 사소한 말 한마디인데 다른 사람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말을 한 사람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당사자는 오래전에 마음을 다친 후였습니다. 다행히 그 모임의 일원들은 친밀한 사이이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 마음을 풀 기회가 있었지만 보통은 그렇지 못합니다. 말로 주는 상처는 흔적이 겉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서 그 기억이 더 오래 가게 되고요. 그렇게 자신을 아프게 했던 말들은 마음속에 앙금으로 남아 내내 돌이키게 되거나 상대방에게 비슷하게 되돌려 주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느끼는 감정은 공통적이기 때문에 제 경험을 되살려 대화 속에서 상처 주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대화 주제 선택, 말투나 목소리, 시선처리 등에서 조금만 신경을 써도 모두가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같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라도 듣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달리 들릴 수가 있기 때문에 화제를 선택할 때는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의 처지나 생각이 어떠한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식으로 손해를 크게 본 사람 앞에서 자신이 이번에 얼마나 이득을 얻었는지를 이야기한다거나 승진이 잘 안 되어 마음 쓰고 있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승진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그 어떤 폭력보다 듣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겠지요. 자신이 속상해 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친한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눈다면 일부러 그 사람을 곤란하게 하려고 작정하고 말을 시작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자격지심 때문에 그런 느낌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말을 할 때 반드시 말과 함께 전달될 수밖에 없는 말투나 목소리도 중요합니다. 같은 내용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말투와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상냥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말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말을 하기 전에 그 말의 내용과 전달 방법을 재빨리 생각해 보고 말로 나타낸다고 합니다. 말투나 목소리, 속도, 억양과 같이 이렇게 늘 말과 함께 동반되는 것을 반언어적인 표현이라고 하는데 말은 아니라도 말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편지로는 느낄 수 없는 감흥이 전화 통화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일 것이겠지요.
또한 말을 할 때 상대방을 보며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화 참여자가 나에게 시선은 전혀 주지 않고 목소리로만 이야기한다면(전화로 대화하는 것도 아닌데) 그것만큼 기분 나쁜 일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과 적절히 눈을 맞추어 가면서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내 마음을 더 잘 전할 수 있을 뿐더러 듣는 사람의 반응도 잘 알 수 있어 효율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눈빛을 나누는 것과 더불어 주제와 연결이 되는 표정을 지으면 좋다고 합니다. 그것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일단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는 상대방의 표정을 따라하면 대체로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혼자 살 수 없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모임을 해야 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냥 되는 대로만 하면 모든 게 잘 풀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큰 모임이든 작은 모임이든 노력이 필요하고, 가까운 사람이든 낯선 사람이든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 한 마디의 말을 하더라도 삼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말과 관련된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지는 못하더라도 오히려 빚을 지지는 않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