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다만 인간은 정치를 떠나서 존립할 수 없음은 안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등의 역할’이 정치라는 사전적 의미는 차치하고라도 다수의 국민은 정치권력을 누가 잡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정치를 잘 해서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평안하면 된다. 근세의 우리나라는 왕조 말에 흔히 보이는 왕의 무능과 관료들의 부패, 세계열강으로부터의 침탈로 국권을 상실하였다가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대한민국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이념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수많은 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참으로 볼품없는 나라였다. 1990년 초 인도 여행 당시 세계인들에게 한국은 일본에게 약 30년이나 뒤진 남북 분단국가였다. 인도 현지인조차 나에게 첫 질문이 일본인이냐고 묻고 한국인이라 대답하면 남한(South Korea)에서 왔느냐, 북한(North Korea)에서 왔느냐고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리고 2000년이 넘어서 간 인도에서는 한국의 위상이 어느 듯 일본에 근접함을 느꼈고, 2010년 이후에는 일본을 뛰어넘는 국제적 위상을 체험했었다.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허리끈을 졸라맨 우리 어버이들의 희생 위에 부유를 누리면서 우리 세대들은 당연한 수순으로 자유와 개인의 인권을 최우선 가치기준으로 삼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K-pop으로 시작된 한류문화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는 정치적 갈등으로 그 위상이 격추되고 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다.욕망이 삶의 근간인 인간은 어찌 되었든 그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인간사회를 유지함에 있어 그 구성원들, 특히 권력을 지닌 지도자들에게 있어 추구하는 욕망의 종류와 색깔 그리고 그것의 조절은 매우 중요하다. 명예를 중시하던 시대에서는 자기수행을 통해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칠정(七情)을 잘 다스림으로서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서도 조심하고 절제하면서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안다.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이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나라와 국민을 품을 수 있는 인격과 긴 안목으로 나라와 국민의 평온한 삶을 살필 줄 아는 지혜를 갖춘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에 앞서 더욱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런 지도자를 만들 수 있는 성숙한 사회적 토양을 만드는 일이다.홍우섭자는 하경이고 산남의진의 선봉장인 구섭의 동생이다. 그의 형을 따라 산남의진에 들어와 장영집사가 되어 각 지역에 출몰하면서 어려움과 험함을 피하지 아니하였다. 성품이 청렴하고 사양심이 깊어 자신의 공적이나 장기를 자랑하지 않음으로써 아래 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청하의 전투에서 몸을 뽑아 맨 선두에 나아가 일본군의 우두머리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형의 뒤를 도왔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진군지휘관이 되었다. 입암전투 등 일이 실패한 뒤 호남과 영남의 사이에 발자취를 감추고 선대(先代)의 인연과 덕으로 뜻을 함께하는 사람을 다수 모집하여 산남의진에서 활약한 의사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계를 만들었다. 그분들의 사적을 드러내려 하였으나 일의 성과가 없어 한을 머금고 죽었다.〈원문〉洪禹燮은 字夏慶이요 先鋒龜燮之弟也라 從其兄入陣하야 爲將營執事하고 出沒各地에 不避艱險하고 廉退不伐하야 甚得上下之心하고 淸河之戰에 奮身先進하야 斬倭酋一人하야 以助兄之後하고 爲進軍指揮官하다 事敗後에 潛跡於湖嶺之間하야 爲其先世而募同志多數하야 結追慕稧而欲彰事蹟이라가 事未成果하고 飮恨而卒하다 <山南倡義誌 卷下54p> 洪禹燮 義士 略歷(홍우섭 의사 약력)洪禹燮(홍우섭)은 字(자)는 夏慶(하경)이오 龜燮之弟也(구섭지제야)라 처음에 경주지방을 책임지고 소모하였고 후에 將營執事(장영집사)로 활약하였고 進軍指揮官(진군지휘관)으로 활약하고 후에 광복운동에 종사하다가 逝去(서거)하다 <山南義陣遺史47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