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이다. 공무원은 공심(公心)으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 사심이 개입되면 부정부패가 일어난다. 하지만 공무원도 사람인지라 공사(公私)를 구별 짓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그래서 공직이 쉬운 자리가 아닌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론과 실제가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참 드물다. 가뜩이나 지금은 모두 능력 위주의 세상이다. 덕망이나 인격이 아니라 학력이나 처세 기술 등의 능력이 뛰어나면 좋은 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세상이다. 도덕, 청렴, 인품, 덕망 등 된사람에 대한 가치가 인정되기보다는 든사람, 난사람이 쓰임새가 많은 세상인 것이다.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을 대표하는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누가 되더라도 결국 우리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터이지만, 국민의 공복으로서 국민의 평안과 나라의 천년대계를 위해 헌신하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김일언관향은 알 수가 없고 누군가 말하기를 경주의 가사(佳士)1)에 사는 사람이라 했다. 평소 사냥꾼으로 총을 잘 쏘기로 이름이 있었다. 산남의진에서 우포장이 되어 여러 고을로 진격하여 싸움마다 맹장으로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몸을 피해야 할 지경에 이르러 청송의 중기(中奇)에서 잠을 자다가 한 나쁜 사람과 관련하여 혐의가 있었는데 그 자에게 암살당했다.〈원문〉金一彦은 貫鄕不詳이요 或言慶州佳士居人이라 素以獵手로 善射有名하다 爲右將하야 進戰列邑에 有猛將之名이러니 至避身之境하야 投宿於靑松中奇라가 與一惡漢으로 有嫌하야 被暗殺하다 <山南倡義誌 卷下55p>金一彦 義士 略歷(김일언 의사 약력)金一彦(김일언)은 貫鄕(관향)은 不詳(불상)이라 본래 獵手(엽수)로 入陣(입진)하여 처음에 眞寶(진보)지방을 책임지고 소모하였고 右炮將(우포장)으로 활약하고 피신을 할 때 청송 中奇(중기)에서 惡人(악인)을 더불고 有嫌(유혐)하여 暗殺(암살)을 당하다 <山南義陣遺史472p>김일언의사 공훈전자사료관 공훈록김일언은 1907년 4월 의병장 정용기(鄭鏞基)가 다시 일어나 산남의진(山南義陣)을 결성하자 참여하여 우포장(右砲將)에 선임되었으며, 산남의진의 3대 의병장 정환직(鄭煥直)과 최세윤(崔世允) 휘하에서 도포장(都砲將)으로 활동하였다. 산남의진은 1906년 4월 경북 영천에서 창의한 의병부대이다. 창의장 정용기가 1906년 4월 28일 경주 우각리(牛覺里)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산남의진은 일시 활동을 중단하였다. 1907년 4월 재기한 정용기는 산남의진을 다시 결성하고 서울진공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북상을 준비하던 중 1907년 10월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전사하였다. 그 뒤 동년 12월 제2대 대장 정환직마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산남의진 결성 초부터 흥해에 머물며 후방에서 지원하고 있던 최세윤은 1908년 2월 5일 이세기(李世紀), 정순기(鄭純基) 등의 추대로 산남의진의 제3대 대장이 되었다. 최세윤은 경북 흥해 출신으로 1894년 동학농민항쟁에 참여하여 부하 300명을 거느린 소모장(召募將)으로 활약한 바 있고, 1896년 안동의진의 제2대 대장 김도화(金道和)의 아장(亞將)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최세윤은 1908년 1월부터 일본군에게 체포된 7월까지 일본군의 끈질긴 토벌작전에도 불구하고 영천을 비롯하여 청송,영덕,영양,영해,경주,청도,의성 등지에서 각 지대별 유격전을 구사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조선유본관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고향은 울산 병정이다. 김성일 등과 함께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산남의진에 들어와 연달아 싸운 여러 해 동안 자못 명성과 칭송이 자자하였다. 적에게 붙잡혀서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대구 감옥에 갇힌 지 몇 년 만에 출옥하여 소금강(小金剛)에서 머물다가 만주로 건너갔다.〈원문〉趙善裕는 本貫不詳이요 蔚山兵丁이라 與金聖一等으로 同時入陣하야 連戰多年에 頗有名稱이러니 被執於敵하야 不服하고 繫達獄數年而出하야 留身於小金崗이라가 渡滿洲하다 <山南倡義誌 卷下55~56p>趙善裕 義士 略歷(조선유 의사 약력)趙善裕(조선유)는 貫鄕(관향)은 不詳(불상)이고 본래 兵丁(병정)으로서 入陣(입진)하여 진두에서 활약하다가 후에 피금되어 복역하고 출옥하여 만주로 이거하다 <山南義陣遺史4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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