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농협은 단순한 금융기관이나 유통업체를 넘어섭니다. 농민에게 농협은 평생을 일궈온 논밭의 동반자이자, 예기치 못한 흉작으로 시름할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삶의 버팀목이지요. 급한 영농자금이 필요할 때나 자녀의 학자금을 마련해야 할 때, 농민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언제나 ‘우리 농협’입니다. 이처럼 농협은 농촌 경제의 혈맥이자 농민들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그 존재 자체가 농촌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그러나 이 소중한 조직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시선에는 신뢰 대신 차가운 회의감과 분노가 있습니다. 농민을 위해 존재해야 할 농협이 소수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 ‘비상임 조합장’이라는 모순적인 제도와 그 뒤에 숨겨진 무소불위의 권력, 그리고 장기 집권을 향한 끝없는 탐욕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그동안 농협을 좀먹은 고질적인 병폐는 바로 비상임 조합장 제도의 악용이었습니다. 전국 1,110여 명의 조합장 중 절반이 넘는 600여 명이 비상임직입니다. 본래 비상임 조합장 제도는 조합의 규모가 작거나 전문 경영인이 필요한 경우, 조합장은 명예직으로서 봉사하고 실질적인 경영은 상임이사에게 맡기라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자산 규모가 기준에 미치지 못함에도 억지로 정관을 수정해 비상임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상임 조합장에게 적용되는 ‘3선 제한(2회 연임)’ 규정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법의 허점을 노린 이 ‘꼼수’를 통해 일부 조합장들은 4선, 5선을 넘어 수십 년간 권좌를 지키며 지역의 ‘황제’로 군림합니다. 이름은 ‘비상임’이지만 실제로는 인사권, 경영권, 예산권 등 모든 실권을 휘두르며 상임이사를 허수아비로 만듭니다. 그러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비상임이라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법을 빠져나갑니다. 책임은 지지 않고 권력만 누리는 구조죠.마침내 지난해 12월,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이러한 ‘꼼수 연임’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개정안은 비상임 조합장에게도 상임 조합장 같이 ‘최대 3선’ 제한을 적용합니다. 이제 비상임이라는 탈을 쓰고 영구 집권을 꿈꾸던 욕심은 차단됐습니다. 이는 단순히 임기 제한을 넘어, 특정 인물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발생했던 인사를 비롯한 각종 비리, 지역사회 유착 등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입니다.또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성과는 조합장 선출 방식을 ‘조합원 직선제’로 통일한 것입니다. 그동안 시행되던 대의원 간선제는 금권 선거와 줄 세우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제 모든 농민이 직접 자신의 대표를 뽑게 됨으로써 참정권이 실질적으로 강화되고, 농협의 주인은 조합장이나 임직원이 아니라 바로 ‘조합원’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립하게 됐습니다.이제 이러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농협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그동안 농협은 조합원의 시름을 덜어주기보다 조합장의 처우 개선이나 의전, 그리고 임기 연장을 위한 정치적 행보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제 장기 집권의 우회로를 찾는 소모적인 모색을 멈추고, 농민의 소득 증대, 농산물 판로 개척, 기후 위기에 따른 영농 환경 변화 대응 등 본연의 가치에 전력해야 합니다.조합장은 농민의 목소리를 바로 듣고 농업의 미래를 고민하는 전문인이자 봉사자여야 합니다. 경영의 전문성을 높여 조합원들에게 실질적인 배당과 복지 혜택을 돌려줄 때, 농협은 비로소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주인인 조합원들이 관심을 쏟지 않으면 다시 부패할 겁니다. 농민들이 눈을 부릅떠 농협의 의사 결정 과정을 감시하고, 투표권을 행사하며 경영에 참여해, 농협이 농민 곁으로 온전히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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