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원칙은 증권가에만 국한되는 논리가 아니다. 변화무쌍한 자연과 싸우는 농업 현장이야말로 이 격언이 가장 절실하게 적용되어야 할 현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역의 과수 산업도 여전히 ‘샤인머스켓’라는 이름의 바구니 하나에 모든 운명을 내맡긴 채 위태로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지난 2024년, ‘금사과 사태’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생산량 급감이 불러온 가격 폭등은 소비자에게는 장바구니의 비명을, 농민에게는 수확의 허탈함을 안겼다.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특정 품종에만 치중된 현재의 재배 구조를 타파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금사과 사태는 언제든 우리 식탁을 기습할 것이라고 말이다.현장의 실태는 엄중하다. 국내 최대 과수 묘목 주산지인 이웃 경산시에서 거래되는 사과 묘목의 약 70%가 ‘후지’ 품종이라는 사실은 우리 농업의 경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단일 품종에 대한 과도한 쏠림은 이상기후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봄철 꽃샘추위가 특정 시기에 집중될 때, 그 시기에 꽃을 피우는 단일 품종은 속수무책으로 냉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만약 수확 직전 대형 태풍이 상륙하거나 특정 품종에 치명적인 병해충이 창궐한다면, 그 피해는 개별 농가를 넘어 국가적 수급 대란으로 번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이제는 ‘품종 다변화’라는 포트폴리오 전략을 농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태풍의 길목을 피해 8월에 수확하는 조생종 ‘골든볼’, 폭염 속에서도 선명한 빛깔을 잃지 않는 고온 적응형 ‘아리수’, 그리고 추석 대목의 강자 ‘홍로’에 이르기까지 선택지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포도 산업의 주산지로 불리던 영천의 샤인머스캣이 최근 겪고 있는 고전 역시 ‘유행을 좇는 단일 품종 식재’가 불러온 예견된 비극이다.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센터가 제시하는 조생종 20%, 중생종 30%, 만생종 50%라는 이른바 ‘황금 비율’은 단순한 통계 수치가 아니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기후 위기 시대에 농가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 방어선이다. 물론 어떤 나무를 심고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오롯이 농민의 몫이다. 그러나 농민들이 막연한 불안감이나 과거의 관성에 젖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은 지자체의 일이다.행정은 기상 데이터와 품종별 생육 특성을 정밀하게 결합한 ‘스마트 농업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야 한다. 단순히 보조금을 쥐여주는 수준을 넘어, 기후 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품종별 수익성과 리스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농민의 판단을 도와야 한다.이상기후는 이제 ‘상수’가 되었다. 한 바구니에 담긴 달걀은 깨지기 쉽지만, 여러 바구니에 나누어 담긴 희망은 어떤 풍파 속에서도 견디는 법이다. 우리 농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품종 다변화,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자 가장 시급한 농정 과제다. 기후 리스크를 분산시킬 때, 비로소 ‘금사과’의 공포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식량 주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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