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근래 정부가 방만한 경영과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바로잡겠다며 농협법 개정안을 밀어붙이자, 전국 농·축협 조합장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방적 개악”이라고 반발합니다. 반면 농민단체는 “64년 만의 주권 회복”이라며 환영합니다. 같은 법안을 두고 이토록 극명하게 엇갈리는 풍경. 이 간극 사이에 뭐가 있을까요.정부안의 핵심은 중앙회장 직선제 도입입니다. 지금까지 농협중앙회장은 전국 조합장들의 간선으로 뽑았습니다. 184만 농민 조합원은 사실상 선거에서 배제된 채, 수백 명의 조합장이 중앙회장을 결정했습니다. 이 구조가 낳은 폐해는 많습니다. 조합장들 사이의 밀실 협의, 패거리 문화, 그리고 반복되는 비리와 횡령. 농협이 외부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직선제 도입에 반대하는 조합장들의 논리는 얼핏 그럴듯합니다. “직선제는 오히려 중앙회장에게 권한을 과도하게 집중시킨다”, “포퓰리즘 공약 남발로 조직 결속력이 약해진다”, “선거 비용이 고스란히 농민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간선제는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을까요. 조합장들이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이 농민의 부담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쥐고 있던 중앙회장 선출권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조합원의 직접 참여를 막으면서 “농민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논리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권한을 내려놓기 싫은 쪽이 으레 꺼내드는 카드가 “혼란 우려”와 “비용 문제”임을 우리는 역사에서 수없이 봐왔습니다.외부 감사기구 신설 반대 역시 마찬가집니다. 조합장들은 “이미 금융감독원의 감독을 받는데 또 다른 감사기구가 생기면 경영 효율이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감독 중복에 따른 비효율이 우려된다는 지적은 제도 설계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해야 할 사안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물음은 이것입니다. 지금껏 내부 감사가 제대로 기능했다면, 왜 이렇게 많은 비리가 터져 나왔는가요. 대체로 감시를 크게 싫어하는 조직은 감시를 받아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반면 농민단체의 환호에도 냉정함이 필요하긴 합니다. “1961년 발족 이후 단 한 번도 주인 대접을 받지 못한 농민의 주권 회복”이라는 선언은 감동적이지만, 직선제 자체가 구조적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직선제가 도입되더라도 선거 과정에서 조직력과 자금력을 앞세운 세력이 판세를 좌우한다면, 결국 농민의 표는 동원되는 숫자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제도 개혁의 성패는 꼭 설계에만 달려 있지는 않습니다. 그 제도가 뿌리내릴 문화와 의식이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정부의 태도도 꼭 짚어봐야 합니다. 농협의 방만 경영을 문제 삼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충분한 공론화 없이 밀어붙이기식 개정안 추진 방식은 또 다른 불신을 낳을 수 있습니다. “농협과의 공론화를 거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라”는 조합장들의 요구는 개혁 반대를 위한 시간 끌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타당한 절차적 요구이기도 합니다. 개혁의 명분이 아무리 정당해도 과정이 속도전이고 일방적이라면 결과도 온전하기 어렵습니다.결국 이 논쟁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농협은 누구 것인가요. 조합장들의 것인가, 중앙회 관료들의 것인가, 아니면 184만 농민 조합원의 것인가요. 답은 명확합니다. 농협은 농민의 것이어야 합니다. 그 원칙에서 출발한다면, 직선제와 외부 감사는 방향 자체는 맞습니다. 다만 설계의 디테일, 비용의 현실적 배분, 공론화의 충분성은 여전히 열린 과제로 남습니다.64년 묵은 구조를 바꾸는 일이라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꾸지 않으면 농협은 계속해서 농민을 위한 조직이 아닌, 누군가의 권력 기반으로 남을 것이 분명합니다. 개혁의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고통을 계속 미루는 비용은 결국 힘없는 농민이 치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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