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3일, 유권자들은 기표소 앞에서 잠시 멈칫할지도 모릅니다. 투표용지가 한 장 더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지방선거 투표용지들 옆에 헌법 개정 국민투표용지가 함께 놓일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38년 동안 단 한 번도 손대지 않은 헌법을 고치자는 투표입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와, ‘또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회의가 교차하는 지금, 우리는 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1987년 이후 개헌은 늘 ‘다음 정권의 숙제’였습니다. 누구나 필요하다고 했고, 아무도 해내지는 못했습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시행해 오면서 폐해 진단서가 수북이 쌓였습니다. 임기 말 레임덕, 정책의 연속성 붕괴, 국민의 심판 기회 박탈. 그럼에도 개헌 논의는 정권 교체기마다 반짝이다 꺼지는 반딧불이처럼 되풀이돼 왔습니다.그런데 이번에는 논의의 무게가 이전과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대통령 권한을 견제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라는 소리들이 임계점을 넘어 헌법 개정을 당위의 영역에서 긴급의 영역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계엄이라는 초헌법적 행위가 벌어지고 헌법의 빈틈이 공포로 느껴졌을까요. 이번엔 그냥 추상적 논의가 아니라 현실의 공포로 느낍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호 과제로 개헌을 선언한 것도, 그 공포의 크기를 정치적 동력으로 전환한 결과일 겁니다. 국회의장과 6개 원내정당이 지난 4월 3일 발의한 개헌안의 핵심은 비교적 명료합니다. 계엄 선포 시 국회의 즉각 동의를 의무화하고, 48시간 내 승인이 없으면 효력이 자동 소멸되도록 했습니다. 지역균형발전을 국가 의무로 헌법에 명문화했고,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을 전문에 담아 민주주의의 계보를 바로잡았습니다. 한자 투성이 헌법을 한글로 고쳐 쓰자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대통령 임기를 둘러싼 여야의 첨예한 대립은 이번엔 빼기로 했습니다. 싸우지 않아도 될 것들부터 먼저 고치자는 전략입니다.문제는 절차입니다.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지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즉 현재 295명 중 197명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발의에 참여한 의원은 188명. 수학은 단순합니다. 국민의힘에서 최소 10명이 손을 들어줘야 합니다. 더욱이 지방선거와 동시 실시를 원한다면 늦어도 5월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는 시간표까지 정해져 있습니다.그런데 지난달 7일 여야 지도부 회동에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선이 끝나고 다시 논의하자”고 선을 그은 적이 있습니다. 반면 청와대는 “대통령이 중임·연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반박합니다. 두 진영의 발표가 갈리는 순간, 협상의 여백이 얼마나 좁은지가 드러났습니다.국민의힘의 셈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지방선거와 개헌 투표를 동시에 치를 경우, 개헌 이슈가 선거 구도를 뒤흔드는 변수가 됩니다. ‘개헌을 막은 정당’이라는 낙인이 지방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고, 반대로 여당 주도 개헌 국면에서 지방선거 의제가 묻혀버릴 수 있다는 계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내에서 이미 균열음이 들립니다. 개헌에 동조하는 의원들이 엄연히 존재하며, 그 10명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역사의 물길이 달라지게 됩니다.결국 이번 개헌 국민투표의 성사 여부는 정치적 의지의 문제입니다. 헌법 전문가들이 수십 년 쌓아온 논의의 산물이 단 10명의 표결로 귀결되는 이 아이러니. 하지만 민주주의는 늘 그런 방식으로 작동해왔습니다. 6월 3일, 투표하러 들어가는 기표소 안에 지방선거에 필요한 투표용지들 외에 헌법 개정을 위한 투표용지가 한 장 더 놓일지 결정하는 개헌안 본회의 투표는 내일(7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38년 묵은 헌법을 바꿀 기회가 또다시 다음 세대의 손으로 미뤄질지,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새 지평이 열릴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그 묵직한 해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